칼을 멘 오쿠니가 무대에서 춤추고 관객이 둘러앉은 모습을 그린 근세 병풍 그림

이즈모노 오쿠니 — 가부키를 만들고 흔적 없이 사라진 여자

일본의 대표적인 공연 예술 가부키. 가부키의 창시자가 누구인가 하면 가장 먼저 언급되는 이름이 오쿠니(阿国)다. 시마네현의 유서 깊은 신사 出雲大社(이즈모타이샤)의 무녀였는데 남장을 하고 춤을 춰 가부키를 창시했고, 연인이었던 무사의 죽음을 애도하며 그의 망령을 무대에 불러올렸다는 이야기까지 전해진다. 그런데 이 이야기를 뒷받침하는 동시대 사료를 찾아보면 확인되는 것이 거의 없다. 오쿠니라는 사람의 생몰년도, 부모도, 심지어 오쿠니라는 이름이 한 사람을 지칭하는 것인지조차 확실치 않다. 기록에서 오쿠니를 찾아 보자.

1603년, 교토 시조가와라

비교적 확실한 사실은 하나 있다. 게이초 8년(1603년) 4월, 교토의 무사 정보지 『당대기(当代記)』에 이런 기록이 남았다.

“요즘 ‘가부키오도리’라는 것이 있다. 이즈모국의 미코(神子女, 무녀)로 이름은 구니인데(다만 미인은 아니었다고 한다), 교토로 상경했다. 이따금 특이한 차림의 남자 흉내를 냈는데, 사무라이들이나 차던 큰 칼과 짧은 칼(와키자시)을 함께 차는 등 옷차림 자체가 유별나게 튀었다. 남자로 분장해 찻집 여자와 노는 모습을 실감 나게 연기했다. 교토 안팎에서 신분을 가리지 않고 다들 즐겨 구경했다. 후시미성에도 여러 차례 찾아가 춤을 추었다.”

칼을 어깨에 멘 오쿠니가 무대에서 춤추고 관객이 둘러앉은 모습을 그린 근세 병풍 그림
교토국립박물관 소장 「아국가부키도 병풍」(阿国歌舞伎図屏風, 17세기 초, 중요문화재) 부분. 칼을 멘 오쿠니가 무대에서 춤추고 관객이 둘러앉아 있다.

이즈모 출신의 여성이 남장을 하고 교토에서 춤을 춰 큰 인기를 끌었다는 사실 자체는 이 기록으로 확인된다. 이 공연이 이후 가부키로 이어지는 계보의 출발점이라는 것도 학계에서 널리 받아들여지는 사실이다. 그러나 명확하게 확인이 되는 기록은 딱 여기까지다. 이 여성이 정확히 누구였는지, 어떻게 그런 공연을 시작하게 됐는지에 대해서는 확인할 수 없다.

무녀인가, 유녀인가, 혹은 두 사람인가

혼란은 사료 사이의 불일치에서 시작된다. 『당대기』는 오쿠니를 “미코(神子女)”, 즉 무녀로 부른다. 반면 비슷한 시기에 쓰인 『게이초견문집(慶長見聞集)』은 오쿠니를 “이즈모국의 고무라 산에몬이라는 자의 딸”이자 유녀(遊女)로 서술한다. 무녀와 유녀. 두 사료가 완전히 다른 신분을 붙여놓은 것이다.

더 흥미로운 기록은 『당대기』보다 3년 앞선 게이초 5년(1600년) 7월 1일, 공가 니시노토인 도키요시의 일기 『시경경기(時慶卿記)』에 있다. 이즈모 출신의 “구니(クニ)“와 “기쿠(菊)” 두 사람이 고노에 저택에서 저녁까지 춤을 췄다는 기록이다. 오쿠니 한 사람이 아니라 두 사람이 함께 등장한다. 그래서 일본 학계 일부에서는 “오쿠니”가 애초에 한 개인의 이름이 아니라, 이즈모 출신을 자칭하며 유랑하던 여성 예능 집단 전체를 가리켰을 가능성을 제기한다.

정작 “이즈모타이샤의 정식 무녀였다”는, 오늘날 가장 널리 퍼진 설명은 동시대 사료 어디에도 없다. 일본의 대표 백과사전들도 이 부분에서는 신중하다. 『일본대백과전서』는 이즈모타이샤 무녀설을 전설로 소개한 다음, 지금의 학계 통설은 오히려 나라 인근을 떠돌던 하급 유랑 무녀, 이른바 ‘아루키미코(歩き巫女)’ 쪽에 가깝다고 적는다. 신사에 소속된 신관이 아니라, 기도와 춤을 팔며 전국을 돌던 예능민에 가까웠다는 것이다. 『신판 일본가공전승인명사전』은 아예 “오쿠니의 출자와 경력에 관해 확실한 자료가 전혀 없다”고만 적혀 있다.

무사의 유령과 함께 춘 춤

오쿠니 이야기에서 가장 낭만적인 대목은 나고야 산자부로라는 무사와의 관계다. 산자부로는 실존 인물이 맞다. 무장 가모 우지사토를 섬긴 무사로, 창을 잘 써 “창을 쓰는 자는 많으나 나고야 산자가 으뜸”이라는 노래까지 생겼을 만큼 당대에 이름을 날리던 인물이었다. 1603년, 다른 가문으로 옮긴 지 얼마 안 되어 동료와의 다툼 끝에 살해당했다. 오쿠니가 교토에서 화제를 모으던 바로 그해다.

문제는 두 사람이 실제로 어떤 관계였느냐다. 후대에 널리 퍼진 이야기는, 산자부로를 그리워한 오쿠니가 그의 망령을 무대 위로 불러내 함께 춤을 췄다는 것이다. 이 서사의 출처는 『가부키노소시(歌舞伎草子)』라는 후대의 통속 문헌으로, 오쿠니와 산자부로가 살아 있던 당시의 기록이 아니다. 『일본대백과전서』는 이 일화를 두고 “신뢰할 수 있는 사료로는 전혀 확인할 수 없으며, 아마도 모두 전설이었을 것”이라 잘라 말한다. 일본어 위키백과의 산자부로 항목에도 “실제로는 오쿠니와 전혀 관계없는 인물이었다”고 적혀 있다.

영국 SOAS대학의 연구자 이반 루마네크는, 오쿠니가 산자부로의 망령을 불러내 함께 춤추는 이 장면이 노(能)에서 죽은 자의 혼을 불러내 위로하는 전형적 형식인 ‘몽환노’를 그대로 가져온 구성이라고 본다. 실제 두 사람이 연애를 했거나 공연 중에 영혼을 불러냈다는 이야기가 아니라, 당대에 유명했던 두 사람을 엮어 만든 공연 콘텐츠였다는 것이다. 실제로는 서로 잘 알지 못했던 두 사람이 후대의 이야기꾼들 손에 의해 연인 관계로 엮인 셈이다.

흥행과 금지, 그리고 완전한 침묵

오쿠니가 시작한 가부키오도리는 곧 각지의 유곽으로 퍼져나갔다. 교토 로쿠조미스지초나 에도 요시와라 같은 유곽이 직접 무대를 차려, 남장한 고급 유녀(太夫)를 스타로 내세운 ‘유녀가부키’를 흥행시켰다. 공연 자체가 손님을 끄는 광고판이었던 셈이다. 이 공연을 향한 에도 막부의 시선은 곱지 않았는데, 공연을 할 때마다 소란이 일었기 때문이다. 유녀를 두고 관객들 사이에 싸움이 끊이지 않았고, 일부 다이묘는 인기 있는 여성 예능인을 사들여 자기 영지에서 독점 공연을 흥행시키기도 했다. 결국 1629년, 에도 막부는 이런 혼란을 이유로 여성의 가부키 공연 자체를 금지했다. 이후 무대는 미소년 배우 중심의 와카슈가부키로 넘어갔고, 이 역시 얼마 지나지 않아 비슷한 이유로 규제받는다.

이 모든 흥행과 금지의 소용돌이 속에서 오쿠니 본인의 행적은 완전히 끊긴다. 그녀가 언제 무대를 떠났는지, 어디서 죽었는지 알려주는 동시대 기록은 없다. 후대에 전해지는 이야기만 셋으로 갈린다. 1607년 오다와라에서 죽었다는 설, 고향 이즈모로 돌아가 비구니가 되어 ‘치게쓰’라는 이름으로 여생을 보내다 일흔다섯에 죽었다는 설, 여든일곱까지 장수했다는 설이다. 사망 연도로 거론되는 해도 1613년, 1644년, 1658년으로 제각각이다. 『아사히일본역사인명사전』은 오쿠니를 둘러싼 이 모든 이야기를 두고, 에도시대를 거치며 다양하게 덧붙여진 “오쿠니 전설의 집대성”이라 규정한다.


지금 교토 시조대교 옆에는 오쿠니의 전신 동상이 서 있다. 1994년에 세워진 것이다. 이즈모공항에도 그를 형상화한 조각상이 있는데, 이건 2021년에 만들어졌다. 이즈모의 무덤 옆에 선 ‘오쿠니탑(阿国塔)‘은 1936년 가부키 배우들의 기부로 세워졌다. 하나같이 오쿠니가 살아 있던 시대로부터 300년도 더 지난 뒤에 생긴 것들이다. 정작 그녀가 살아 있던 시절 그녀를 그린 것은, 이 글 맨 위에 실린 병풍 그림 한 점이 전부다.

사료 역시 확인되는 것은 딱 한 곳뿐이다. 1603년 교토, 남장을 한 여자가 칼을 차고 무대에 올라 사람들을 열광시켰다는 것. 그 앞뒤 기록은 전부 비어 있고 전해져 내려오는 것은 전설 같은 이야기뿐이다. 가부키의 시조로 기억되는 오쿠니에 대해 우리가 확실히 아는 것은, 그런 사람이 한때 존재했다는 사실 하나뿐이다.

출처

  • Benito Ortolani, The Japanese Theatre: From Shamanistic Ritual to Contemporary Pluralism (Princeton University Press, 1990) — 오쿠니의 무녀적·주술적 춤에서 가부키가 발생하는 과정을 다룬 서구권 표준 일본 연극사.
  • Donald Keene, Nō and Bunraku: Two Forms of Japanese Theatre (Columbia University Press, 1990) — 노(能)의 형식과 미학을 다뤄, 오쿠니 공연이 몽환노 구조를 차용했다는 본문 분석의 배경이 되는 연구.
  • Ivan Rumánek, “Analysis of Okuni Sōshi as Sources of the Earliest Kabuki” (SOAS, University of London) — 『오쿠니노소시』류 문헌을 사료로 검토하며 오쿠니-산자부로 장면의 몽환노적 구성을 분석한 논문.
  • 服部幸雄, 『歌舞伎成立の研究』(風間書房, 1968) — 오쿠니 가부키를 중세 여성 예능의 하나로 위치시키고 가부키의 실질적 성립을 논한 학술서.
  • 『出雲阿国』『阿国』(日本大百科全書・朝日日本歴史人物事典 등, コトバンク 수록) — 이즈모타이샤 무녀설을 전설로 규정하고 ‘아루키미코’설과 사망 관련 여러 설을 정리한 일본어 백과·인명사전 항목.
  • 『女歌舞伎』(ジャパンナレッジ 수록) — 유녀가부키의 흥행 구조, 1629년 금지령의 배경(관객 간 다툼, 다이묘의 예능인 매점)을 정리한 항목.
  • Encyclopædia Britannica, “Okuni.”
  • Wikipedia, “Izumo no Okuni” / ウィキペディア「出雲阿国」「名古屋山三郎」 — 사료 불일치와 산자부로 관계 전승을 정리한 항목.

히어로 및 본문 병풍 이미지는 교토국립박물관 소장 「阿国歌舞伎図屏風」(17세기 초, 중요문화재) 계열의 근세 병풍 그림으로, Wikimedia Commons 공개 도메인 자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