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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 도트리슈, 친정 스페인과 전쟁을 지휘한 왕비 스페인 공주로 프랑스에 와서, 적국에 편지를 보내다 들통나고, 끝내 그 친정과의 전쟁을 지휘한 왕비. 『삼총사』가 지운 안 도트리슈의 실제 사료를 따라간다.
- 조반니 안드레아 도리아, 전설의 그림자에서 평가가 세 번 뒤집힌 제독 레판토 해전의 우익을 맡았던 제노바 제독 조반니 안드레아 도리아. 비겁자라는 낙인과 신중한 명장이라는 재평가 사이에서 400년간 이름이 다시 쓰인 2세대 해군 귀족의 생애.
- 독성학의 아버지 파라켈수스, 책을 불태운 떠돌이 의사 '독성학의 아버지'로 불리는 르네상스 의사 파라켈수스. 갈렌의 책을 모닥불에 던지고 독일어로 강의한 떠돌이였지만, '용량이 독을 만든다'는 그의 가장 유명한 문장은 정작 그가 죽고 23년 뒤에야 인쇄됐다.
- 시작은 미약했으나 거의 모든 걸 이룬, 그러나 마지막 한끗이 아쉬웠던 살리흐 레이스 해적 부관에서 알제 총독까지 오른 오스만 제독 살리흐 레이스(Salah Rais). 그의 최전성기 임무는 바다가 아니라 모로코 내륙의 육상 정치였다. 1554년 그는 페즈를 점령하고 자기 손으로 한 왕을 왕좌에 앉혔지만, 그 왕은 아홉 달 만에 죽고 도시는 적의 손으로 넘어갔다. 정작 살리흐 자신은 마지막 원정이 출항하기도 전에 페스트로 세상을 떠났다.
- 울루치 알리, 레판토에서 혼자 살아 돌아온 배교자 칼라브리아 어부의 아들로 태어나 갤리 노예가 되었다가, 개종 후 오스만 해군 총사령관까지 오른 울루치 알리. 레판토의 패전 속에서 함대를 빼내 '검'이라는 이름을 얻은 한 르네가도의 일생.
- 세 천하인을 섬기고 살아남은 무장: 이코마 치카마사 미노의 일개 고쿠진에서 사누키 17만 석의 다이묘가 된 이코마 치카마사. 그는 오다 노부나가·도요토미 히데요시·도쿠가와 이에야스라는 세 천하인을 차례로 섬기며 78세까지 살아남았다. 화려한 무공도, 빼어난 행정 솜씨도 아닌, 시대의 바람이 어디로 부는지 읽어내는 감각이 그를 끝까지 살렸다. 세키가하라에서 그가 아들과 갈라선 이유가 그 감각을 가장 잘 보여준다.
- 바다 위의 성을 지은 가문은 왜 사라졌나: 이코마 소동 이코마 치카마사가 바닷물을 끌어들여 쌓은 다카마쓰성. 그러나 그가 세운 가문은 사누키를 받은 지 반세기를 넘기지 못하고 통째로 사라졌다. 어린 영주, 외가의 후견, 새로 들어온 가신과 대대로 섬겨온 가신의 다툼. 에도 막부 초기에 한 다이묘 가문이 영지를 잃는 과정은 개인의 악행보다 훨씬 구조적인 데가 있었다. 이코마 소동의 전말.
- 미토 고몬의 형이 다스린 성: 다카마쓰의 마쓰다이라 이코마 가문이 떠난 다카마쓰성에 들어온 새 주인은 미토 도쿠가와 가문에서 왔다. 초대 번주 마쓰다이라 요리시게는 그 유명한 '미토 고몬' 미쓰쿠니의 친형이면서도, 동생에게 종가 자리를 내준 사람이었다. 태어나자마자 버려질 뻔한 형과 적자가 된 동생, 그리고 두 집안이 주고받은 자식들. 다카마쓰 마쓰다이라 가문이 막부의 친번으로 200년을 다스린 이야기.
- 이미 지도에 있던 섬 마데이라를 '발견'한 남자, 자르쿠 1419년 포르투갈은 마데이라를 처음 발견했다고 선언했다. 그런데 마데이라는 발견 68년 전 이미 이탈리아 해도에 '나무 섬'이라는 이름으로 그려져 있었다. 발견이 아니라 선점이었던 이야기.
- 가본 적 없는 성지를 묘사한 순례기: 트리폰 코로베이니코프 16세기 후반 모스크바 상인이자 궁정 서기관 트리폰 코로베이니코프. 이반 뇌제가 죽인 아들을 추모하는 자선금을 들고 두 차례 콘스탄티노폴리스와 예루살렘을 다녀왔고, 그의 이름을 단 순례기는 200년 넘게 성서처럼 베껴 읽혔다. 그러나 그 순례기 상당 부분은 그가 발도 들이지 않은 시나이 산을 묘사한, 한 세대 앞선 다른 여행자의 글을 옮긴 것이었다.
- 스톡홀름을 지킨 여자 — 크리스티나 닐스도테르 예렌스티에르나 (1494-1559) 1520년 남편이 전장에서 죽자, 스웨덴 섭정의 미망인은 수도 스톡홀름을 혼자 지켰다. 그녀가 버틴 시간 동안 한자동맹 함대가 준비됐고, 그 함대가 스웨덴 독립을 가능케 했다. 그러나 독립 이후 새 왕조는 그녀를 정치 전면에서 지우려 했다.
- 외레순드 통행세: 상인들이 왕국을 무너뜨린 발트해 관세 전쟁 1428년, 독일 상인 도시 연합이 코펜하겐을 포격했다. 그 뒤에는 통행세 하나가 있었다. 외레순드 해협의 병목이 어떻게 북유럽 패권을 바꿨는지.
- 카트린 드 메디시스, 학살의 도시에서 마카롱을 굽다 카트린 드 메디시스가 30년 종교내전 한복판에서 프랑스 궁정에 깐 르네상스 럭셔리 프로젝트. 마카롱부터 폴란드 왕관까지, 그리고 검은 전설의 진실.
- 가르시아 알바레스 데 톨레도, 지중해의 숨은 실무자 1565년 말타를 구하고 1564년 페뇽 데 벨레스를 462년째 스페인령으로 만든 16세기 스페인 해군 사령관 가르시아 알바레스 데 톨레도. 사촌 알바 공작의 그늘에 가려진 행정관의 이야기.
- 합스부르크 궁정의 여성 화가, 소포니스바 앙귀솔라 1559년 펠리페 2세의 부름을 받고 마드리드 궁정에 '시녀' 신분으로 들어간 르네상스 화가 소포니스바 앙귀솔라. 미켈란젤로의 비공식 멘토십, 왕비 엘리자베스 드 발루아와의 우정, 1624년 반 다이크의 방문, 1734년 알카사르 화재와 1970년대 재발견까지 약 90년 인생을 정리한다.
- 디에고 데 알마그로: 가난한 땅을 떠난 게 아니었다 알마그로가 칠레가 가난해서 돌아왔다는 통설은 친발디비아 역사가 곤고라 마르몰레호(1575)의 단정적 평가가 1850년에 인쇄되어 굳은 사후 합리화에 가깝다. 1537년 4월 8일 쿠스코 도착 당일 밤 피사로 형제를 체포한 행보, 1915년까지 채굴 불가능했던 추키카마타 동, 롤란도 메야페(1959)가 짚은 합자 사업의 자산 소진을 함께 읽으면 회군의 진짜 동기는 칠레의 가난이 아니라 페루의 권력 공백이었다.
- 마리아 지빌라 메리안, 52세 독일 여성이 수리남 정글에서 보낸 21개월 1699년 52세에 노예제 식민지 수리남으로 떠난 독일 자연학자 마리아 지빌라 메리안의 21개월 체류, 도판 45번 노예제 캡션, 자발발생설을 깬 그림, 표트르 1세 컬렉션과 사후 200년 평가 굴곡을 정리한다.
- 오크모스 — 발칸 산골 지의류가 Chanel No.5의 베이스가 된 이야기 16세기 발칸 산골에서 채취된 회색 지의류 오크모스(Evernia prunastri)가 그라스 향수 공방을 거쳐 Chanel No.5와 Guerlain Mitsouko의 베이스가 된 경로와, 1990년대 IFRA·EU 규제로 사라진 과정을 정리한다.
- 뮈에진자데 알리 파샤 완전 정리 — 레판토 해전 오스만 총사령관의 생애와 패배 무에진의 아들에서 카푸단 파샤까지. 1571년 레판토 해전에서 전사한 오스만 함대 총사령관 뮈에진자데 알리 파샤의 생애를, 오스만 1차 사료(셀라니키·무스타파 알리·페체비·카팁 첼레비)와 학계 수정주의 해석을 균형 있게 반영해 총정리한다.
- 안탈리아 역사: 2,200년의 항구도시 로마의 관문이었고, 셀주크의 첫 지중해 항구였으며, 오스만의 교역 거점이었다. 안탈리아 2,200년의 항구 이야기.
- 코피아포: 항구 없는 광산 도시의 3,000년 세계에서 가장 건조한 사막 한가운데, 잉카가 '터키석의 정원'이라 부른 계곡이 있다. 스페인이 왔고, 영국이 왔고, 은이 소멸했다.
- 비앙카 카펠로, 대공비가 된 사형수 베네치아에서 사형 선고를 받은 열다섯 살 소녀가 어떻게 토스카나 대공비가 됐는지, 그리고 왜 독살 의혹 속에 사라졌는지에 관한 이야기.
- 대항해시대 동남아시아에서 기독교는 왜 실패했는가 불교와 이슬람은 왕을 신성화했고, 기독교는 왕을 교황 아래 두었다. 대항해시대 동남아시아에서 기독교가 뿌리내리지 못한 이유를 왕권 정당성의 관점에서 분석한다.
- 쓰가루 다메노부 — 주군을 배신하고 다이묘가 된 남자 난부씨 가신에서 도요토미 인정 다이묘로. 기습·이중 외교·정략으로 쓰가루를 통일한 다메노부의 생애.
- 마에다 도시이에는 시즈가타케에서 카츠이에를 배신했나 — 1583년 4월의 이탈 재검토 1583년 4월 시즈가타케 전투에서 마에다 도시이에는 시바타 카츠이에 진영에서 갑자기 전선을 이탈했다. 사전 내통이었나, 현실적 판단이었나. 『신쵸코키』 동시대 사료와 가가번 어용 편찬, 그리고 가사야 가즈히코·다카야나기 미츠토시 등 최근 학계 평가까지 짚어가며 통설을 사료 수준에서 재검토한다.
- 젊은 마에다 도시이에는 왜 주아미를 베었나 — 1559년 코가이기리 사건 1559년 키요스성에서 21살의 마에다 도시이에가 노부나가의 도보슈 주아미를 베었다. 마츠가 준 코가이 한 점에서 시작된 코가이기리 사건이 어떻게 도시이에에게 2년의 출사정지를 안기고, 노부나가가 그를 어떤 조건으로 다시 받아들였는지 사료에 근거해 정리한다.
- 아체 세람비 메카 완전 정리 — 마르코 폴로부터 오스만 외교까지 13세기 묘비에서 시작해 이스탄불 외교 서한까지, 수마트라 북단 아체가 '세람비 메카(Serambi Mekkah)'라는 이름을 얻은 역사적 과정을 추적한다. 마르코 폴로·이븐 바투타·오스만 제국의 기록으로 동남아시아 이슬람화의 최전선을 살펴본다.
- 산살바도르와 산도밍고: 같은 해에 세워진 두 요새의 갈라진 운명 (1626–1980) 1626년 스페인이 대만 북부에 세운 두 요새. 한쪽은 1668년 네덜란드가 폭파해 조선소 주차장 아래 묻혔고, 다른 한쪽은 청·영국·호주·미국을 거쳐 1980년 대만으로 돌아왔다. 17세기 이슬라 에르모사의 비대칭 운명.
- 마에다 도시이에 완전 정리 — 가가 100만석의 시조 생애 총망라 파문과 복귀, 창의 마타자로서의 무용, 노부나가·히데요시·이에야스 세 천하인을 모두 섬긴 62년. 가가 100만석의 시조 마에다 도시이에의 전 생애를 사료에 근거해 연표·관직·영지 변화와 함께 총정리한다.
- 이사벨라 데스테 완전 정리 — 르네상스를 지배한 여자 외교관·수집가·패션 아이콘·통치자. 이사벨라 데스테(1474–1539)가 28,000통의 서신으로 유럽을 움직인 방법을 생애 전반에 걸쳐 정리한다.
- 다빈치도 거절한 여자 — 이사벨라 데스테의 소묘 이야기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이사벨라 데스테의 초상화 의뢰를 거절한 배경과 루브르 소묘의 역사적 의미를 당시 서신 기록을 바탕으로 정리했다.
- 유행을 만든 여자 — 이사벨라 데스테 패션 유산 8가지 만토바에서 시작해 파리·런던까지 퍼진 이사벨라 데스테의 패션 유산 8가지. 발초부터 리틀 블랙 드레스의 기원까지 역사 기록을 바탕으로 정리했다.
- 나사우 함대: 5일 차이로 실패한 네덜란드의 태평양 야망 (1623–1626) 11척의 함선과 1,600명의 병사. 은 수송선을 5일 차이로 놓친 나사우 함대의 태평양 원정은 왜 실패했는가. 17세기 VOC 팽창 전략의 한계를 보여주는 역사적 사례.
- 레오나르도 다빈치와 미켈란젤로는 왜 서로를 혐오했나 1504년 피렌체, 레오나르도 다빈치와 미켈란젤로가 공개 석상에서 충돌했다. 두 천재는 왜 서로를 혐오했나.
- 오랑카야(Orang Kaya)란 무엇인가 — 동남아시아 항구의 중개자와 에도 막부 향사 비교 오랑카야는 15~19세기 말레이·인도네시아 해양 왕국의 항구 중개자 계층이다. 에도 향사와 비교해, 위에서 받은 권위와 스스로 쌓은 네트워크의 차이가 어떻게 두 계층의 운명을 갈랐는지 살펴본다.
- 북동항로를 찾아 떠난 휴 윌로비, 1553년의 기록 1553년 영국 탐험가 휴 윌로비는 아시아로 가는 북동항로를 찾아 세 척의 배를 이끌고 출항했다. 그의 자필 일지는 9월 18일에 멈췄고, 이듬해 봄 어부들이 배 안에서 64명의 시신을 발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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