젠토쿠코(善德公)〔휘는 키요야스(淸康)이며, 세상에서는 안조 지로사부로(安祥二郞三郞) 님이라고 불렀다〕는 병사들을 아끼고 용맹한 재주를 갖추셨으므로 사람들이 그 덕에 이끌려 따랐다. 오와리(尾張)로 향하시어 모리야마(森山)에 진을 치셨는데, 뜻밖의 일이 일어나 아베 야시치로(安部彌七郞)가 시해하였다. 우에무라 데와노카미(植村出羽守)는 아직 신타로(新太郞)〔일설에는 신로쿠로(新六郞)〕라 불리던 때였는데, 열여섯 살로 마침 곁에 있다가 야시치로를 그 자리에서 베어 죽였다. 가신들이 달려 모였으나 그저 넋을 잃고 있을 뿐이었다. 우에무라가 사람들에게 "주군의 원수는 이미 베어 버렸습니다. 마음에 남은 일도 없습니다. 할복하여 저승길에 모시겠습니다" 하고 말했다. 사람들이 대답했다. "주군의 원수를 그 자리에서 친 공은 말할 것도 없소. 여기 있는 사람들도 곁에만 있었다면 누가 그대만 못했겠소. 그대 한 사람이 다행히 곁에 있었던 것은 신령의 보살핌이라 할 만하오. 그러니 할복하여 저승길에 모시는 일 또한 누가 그대만 못하겠소. 각자 생각한 대로 하면 될 것이오. 다만 우리는 반드시 죽을 날이 가까이 있으니, 오늘 헛되이 배를 가를 생각은 없소." 우에무라가 듣고 "그 반드시 죽을 날이란 무엇이오?" 하고 물었다. 그러자 이렇게 말했다. "우리가 죽을 날은 열흘을 넘기지 않을 것이오. 주군께서 이리 되셨다는 소식이 적에게 들어가면 단조노추 노부히데(彈正忠信秀)가 군세를 이끌고 오카자키(岡崎)로 쳐들어올 것이오. 우리가 여기서 배를 가르면 누가 어린 주군을 위해 화살 한 대라도 제대로 쏘겠소. 그러니 우리가 싸우다 죽을 때는 바로 그때라고 생각하오. 어차피 죽을 목숨, 빠르고 늦음은 열흘 차이도 나지 않을 것이오. 그대의 할복을 굳이 말리려는 것은 아니오." 우에무라가 듣고 "참으로 옳은 말이오. 그렇다면 여러분과 함께 똑같이 싸우다 죽겠소" 하고 오카자키로 돌아갔다. 과연 예상대로 오다 노부히데(織田信秀)가 팔천 병사를 이끌고 미카와(三河)로 쳐들어와 다이주지(大樹寺)에 진을 쳤다. 이때 나이젠노카미 노부야스(內膳正信安)도 등을 돌려 우에노(上野) 성에 머문 채 군사를 내지 않았다. 어제까지 따르던 고쿠진(國人)들도 많이 마음이 변했다. 돌아온 가신들은 겨우 팔백 명이었는데, 어린 주군께 작별을 고하고 모두 한꺼번에 울부짖으며 출진했다. 두 갈래로 나뉘어 이다(伊田) 너머로 나아갔다. 이 사람들의 의로운 마음에 신령이 감동하셨던 것일까, 그곳에 보이던 하치만 신사(八幡宮)의 도리이가 적 쪽을 향해 여섯 자 남짓 저절로 움직였으니 불가사의하다는 말로도 모자랐다. 사람들은 크게 힘을 얻어 밀려오는 적을 기다렸다. 이곳은 위로는 서리에 마른 들길이 멀리 뻗어 있고, 아래로는 농부들이 논으로 다니는 길이 한 줄기 있었다. 오다 군도 마찬가지로 두 갈래로 나뉘어 윗길과 아랫길로 이쪽을 향해 밀려왔다. 하치만 신전 쪽에서 흰 깃 화살이 날아와 적 위로 떨어지는 것이 구경하던 사람들 눈에 보였다. 윗길로 간 아군은 들판이 넓어 한가운데 포위되어 한 사람도 남김없이 전사했다. 우에무라는 아랫길로 나아가 맨 앞에서 내달렸다. 아군은 겨우 사백 명으로 사천의 적을 깨뜨리고, 다시 윗길로 밀고 나아갔다. 들길의 적도 뿔뿔이 흩어졌고, 노부히데는 간신히 목숨을 건져 오와리로 물러갔다. 이것이 이다 합전으로, 열 배의 적을 이긴 예는 드물다. 하물며 대장이 계시지 않은 군대로 어린 주군을 세운 일은 예나 지금이나 견줄 데가 없을 것이라며, 의로운 신하들의 절개를 이야기로 전해 미담으로 삼았다.
주군을 잃은 가신 팔백이 이다(伊田)에서 오다 노부히데를 물리친 일
에도 시대 중기 오카야마번의 유학자 유아사 조잔(湯浅常山)이 센고쿠~에도 초 무장들의 일화를 모은 『조잔키단(常山紀談)』(1739년 자서)의 한국어 번역이다. 후대에 전해진 이야기를 모은 책이라 역사적 사실과 다른 대목이 있다.
善德公御諱淸康安祥二郞三郞殿と世に稱し申す士卒を憐み、勇材御座しませしかば、人々其德に靡き從ひ奉れり。尾張國に向はせ給ひ、森山に陣せさせ給ひしに、不慮の事出來て、安部彌七郞弑し奉りける。植村出羽守、未だ新太郞一說新六郞と申せしが、十六歲にて御側に有合せ、彌七郞をば立處に誅してけり。御家人馳集りて唯呆れ居たり。植村人々に向ひて、御敵をば旣に切つて棄て候。思ひ置く事もなし。腹切て御供可㆑仕といふ。人々、主君の敵たらん者を立所に討ちし其功いふに及ばず。是に候ふ者共、御側にだに候はば誰か御身に劣るべき。御身一人幸に御側に有し事、之神明の冥助とや言ふべき。されば腹切つて冥途の御供申さん事、又誰かは御身に劣るべき。されば各其處存の如くに振舞ひて然る可し。我等は必死近きにあり。今日徒に腹切らんとも存ぜず、と答ふ。植村聞きて、其必死は如何と問ふ。其時、抑我等必死は僅十日を過すべからず。殿斯ならせ給ひぬと敵の方に聞えなば、彈正忠信秀軍勢を率ゐて岡崎に攻來らん。我等爰にて腹切らば、誰か若君の御爲に矢の一筋もはか〲しく射出すべき。然れば我々が討死は此時に有りと覺ゆ。同じく死せん命、遲速は十日を隔つまじ。御身が切腹を强て止めんとにも非ず、といへば、植村聞きて、實に理かな。然らば人々と倶に同じく討死をせん、とて岡崎に引返す。案に違はず織田信秀、八千の兵を引率して三河の國に打入り、大樹寺に陣とりたり。此時內膳正信安も背き參らせ、上野の城に在りて兵をも出さず。昨日まで屬せし國人ども、多く心變してけり。引返したる御家人等僅に八百人、若君に御暇乞して、一同にどつと泣叫びてこそ打出でけれ。二手に分ちて伊田の彼方に打て出づ。此人々の義心を神明感じ給ひけん、此所に見え給ひし八幡宮の鳥居の、敵の方に向ひて六尺餘り自ら動きけるこそ、不思議といふも餘りあれ。人々大に力を得て、寄せ來る敵を待つ程に、此所は、上は霜枯の野路遙に、下は賤が田の面に通ふ道一筋あり。織田家の軍も同じく二手に成りて、上道下道此方に向ひて寄せ來たる。八幡の寶殿の方よりして白羽の矢降り來り、敵の上に落ちかゝると見物の人の目には見えてけり。上に向ひし味方、野は廣し、眞中に取籠られ、一人も殘らず討死す。植村下道より向ひて眞先を駈く。味方僅に四百人、四千の敵を打破り、又上道に押し向ふ。野路の敵も散々に亂れ立ち、信秀辛き命生きて尾張國に引返す。これ伊田の合戰とて、十倍の敵に勝ちし事例少なし。況して大將座しまさぬ軍して、幼なき君を立てしこと、古今に比類有るべからず、と義臣の節操を語り傳へて美談とせり。
번역: historyfoli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