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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카타가하라 전투에서 도쇼구가 물러나신 일

· 卷之三 제32화 · 원문(일본어) 쪽

에도 시대 중기 오카야마번의 유학자 유아사 조잔(湯浅常山)이 센고쿠~에도 초 무장들의 일화를 모은 『조잔키단(常山紀談)』(1739년 자서)의 한국어 번역이다. 후대에 전해진 이야기를 모은 책이라 역사적 사실과 다른 대목이 있다.

미카타가하라(三方ヶ原) 전투에서 카이(甲斐)의 군사가 거세게 뒤쫓아 왔으므로 도쇼구(東照宮,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몇 번이고 말을 되돌리셨다. 오쿠보 고로에몬 타다츠구(大久保五郞右衞門忠次)가 부상해 걸어서 싸우게 되었는데, 스가누마 토조 사다요시(菅沼藤藏定吉)에게 말을 걸자 사다요시는 타다츠구를 말 앞테에 태워 물러났다. 훗날 스가누마에게 나가미츠(長光)의 칼을 내려 칭찬하셨다. 스가누마는 다시 되돌아가 뒤쫓아 오는 적을 막았다. 아마노 야스카게(天野康景), 나가사카 겐지로(長坂源次郞), 사카베 마타주로(坂部又十郞) 등도 버티고 서서 막아 싸웠다. 오쿠보 사가미노카미 타다치카(大久保相摸守忠隣)〔이때는 신주로(新十郞)〕가 말을 화살에 맞아 걸어서 싸우게 되어 위태로운 것을 보시고, 오구리 추조 히사츠구(小栗忠藏久次)〔뒤에 추자에몬(忠左衞門)이라 했다〕에게 "신주로는 어린 무사다. 그를 구하라" 하고 이르시니, 히사츠구는 자기 말에 타다치카를 안아 태우고 물러났다. 틈을 주지 않고 바싹 쫓아오는 적 무사가 있었는데, 노나카 산고로 시게츠구(野中三五郞重次)가 되돌아 맞서 베었으므로 뒤에 노부쿠니(信國)의 칼을 받았다. 구로야나기 스케쿠로(畔柳助九郞)는 말 곁을 떠나지 않았으므로 뒤에 금 부채를 내려 칭찬하셨다. 그래도 적이 잇달아 바싹 쫓아오자 미즈노 타로사쿠(水野太郞作)가 버티고 서서 막아 싸우는 것을 보시고 다시 말을 되돌리셨다. 나루세 키치에몬 마사카즈(成瀨吉右衞門正一)는 형이 죽기 직전에 "너는 이 근방 길을 잘 안다. 모시고 가서 무사히 물러나시게 하라"고 일렀으므로 곁을 지키며 모시다가, 되돌아가 적을 쫓아 물리쳤다. 마침내 하마마츠성(濱松の城)에 드셨다. 도리이 히코에몬 모토타다(鳥居彥右衞門元忠)에게 명하여 겐모쿠구치(玄默口)의 문을 열고 물러나는 병사들을 들이게 하셨다. "설령 적이 뒤따라온다 해도 내가 지키는 성에 쉽게 쳐들어올 수 있겠는가. 문을 닫지 말고 곳곳에 화톳불을 피워라" 하고 이르셨다. 이날은 하늘이 흐리고 눈이 흩날려 추위가 유난히 심했다. 모시고 말에서 내려 성안에 든 사람은 마츠다이라 하치로사부로 야스사다(松平八郞三郞康定), 마츠다이라 야쿠로 카게타다(松平彌九郞景忠), 히라이와 시치노스케 치카요시(平岩七之助親吉), 오쿠보 타다치카, 스가누마 사다요시, 츠즈키 소자에몬 히데츠나(都築惣左衞門秀綱) 등이었다. 츠즈키의 아내가 죽을 들려 보내 모시고 온 사람들에게 나눠 주었다. 훗날 옷을 내려 칭찬하셨다. "오늘 적의 뒤를 밟아 싸웠더라면 이겼을 터인데, 아군이 너무 서두르는 바람에 뜻하지 않게 졌다. 분한 일이다" 하고 말씀하셨다. 시녀 구노(久野)가 물에 만 밥을 올리자 세 번 더 드시고는 "나는 지쳤다" 하며 베개를 베고 코를 골며 주무셨다. 야마가타(山縣)가 성 가까이 밀고 들어와 "문짝을 닫을 틈도 없었던 모양이다. 어서 쳐들어가자" 하고 말하자, 바바 미노노카미(馬場美濃守)가 듣고 말했다. "싸움에 지고 물러났다면 문을 닫고 다리도 끌어올려야 할 텐데, 그러기는커녕 화톳불이 대낮 같다. 혹시 계책이 있을지 모르니 가볍게 쳐들어가서는 안 된다. 도쿠가와 님은 도카이도 제일의 궁수(海道一の弓取り)다. 잘 살펴본 뒤에 하자." 그렇게 머뭇거리는 사이 성안에서 도리이 히코에몬, 와타나베 한조(渡邊半藏), 같은 집안 한주로(半十郞), 사쿠라이 쇼노스케(櫻井莊之助), 가츠야 진고베에(勝屋甚五兵衞)를 비롯한 굳센 무사 백여 명이 치고 나오자, 카이의 군사는 성문 앞에서 물러나 공격하지 않았다.

원문
三方ヶ原の軍に甲斐の兵激しく追ひ駈けたりしかば、東照宮幾度と無く御馬を返し給ふ。大久保五郞右衞門忠次手負ひて步立になりしが、菅沼藤藏定吉に詞を掛くれば、忠次を馬の前輪に乘らせて退たりけり。後に菅沼に長光の刀を賜はりて賞せさせ給ふ。菅沼又引き返して追ひ來る敵を防ぎけり。天野康景、長坂源次郞、坂部又十郞等も踏み止まりて防ぎ戰ふ。大久保相摸守忠隣此時新十郞馬を射られ、步立に成りて危かりしを御覽じて、小栗忠藏久次後に忠左衞門と稱すに、新十郞若武者なり彼れ助けよ、と仰せられしかば、久次己が馬に忠隣を抱乘せて引き退く。敵透間無く追詰め奉りける武者有りけるを、野中三五郞重次返し合せて討取りければ、後に信國の刀を賜りぬ。畔柳助九郞御馬の側を離ねば、後に金の扇を賜りて賞せさせけり。猶敵手繁く追詰め奉りけるに、水野太郞作踏み止りて防ぎ戰ふを御覽じて、又御馬を引き返さる。成瀨吉右衞門正一は、兄が最後に汝は此邊の案內好く知れり。御供して恙なく引き取らせ奉るべき由云ひたりしかば、御側に附き奉りしが引き返して敵を追ひ退け、終に濱松の城に入らせ給ふ。鳥居彥右衞門元忠に御下知ありて、玄默口の御門を開きて引取る兵を入らせらる。假令敵慕ひ來るとも我籠る城に手易く討ち入るべきや。門を閉ぢずして篝火を所々に焚くべし、と仰せらる。此日は天曇り雪散りて寒氣殊に甚し。御供して馬より下り立ち、城中に入りし人は松平八郞三郞、康定、松平彌九郞景忠、平岩七之助親吉、大久保忠隣、菅沼定吉、都築惣左衞門秀綱等なり。都築が妻粥を持せ來りて御供の人々に配り與ふ。後に衣服を賜りて賞美あり。今日敵の跡を踏んで戰はば勝つべきに、味方早り過ぎて心ならず敗軍しぬ。口惜き事なり、と仰せ有り。湯漬飯を侍女久野奉りければ、三度換へ給ひ、我疲れたり、とて御枕を傾ぶけられ、鼾かきて御睡りあり。山縣城近く攻め寄せ、門の扉をたつるに暇なしと覺えたり。如何に攻め入らばや、といふを、馬場美濃守聞きて、打負けて引取りたれば、門を閉ぢ橋をも引く可きに、左は無くて篝火白日の如し。若し謀ある可きか、輕々しく攻め入る可からず。德川殿は海道一の弓取りなり。好く見屆けてこそ、とて猶豫しける處に、城中より鳥居彥右衞門、渡邊半藏、同半十郞、櫻井莊之助、勝屋甚五兵衞を始めとして、屈竟の剛の者共百餘人突いて出でしかば、甲斐の兵虎口を引き退きて攻めざりけり。

원문(일본어) 쪽 e077.p01

번역: historyfoli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