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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카자키 사부로님의 일

· 卷之四 제31화 · 원문(일본어) 쪽

에도 시대 중기 오카야마번의 유학자 유아사 조잔(湯浅常山)이 센고쿠~에도 초 무장들의 일화를 모은 『조잔키단(常山紀談)』(1739년 자서)의 한국어 번역이다. 후대에 전해진 이야기를 모은 책이라 역사적 사실과 다른 대목이 있다.

오카자키 사부로(岡崎三郞, 도쿠가와 노부야스)님이 덴쇼(天正) 7년(1579) 후타마타(二股) 성에서 자결한 일은 노부나가(信長) 쪽에서 온 통보에서 비롯되었다. 사부로님이 모반할 뜻을 품고 카츠요리(勝賴)와 내통해 후타마타 성에 카이(甲斐)의 군사를 끌어들이려 꾀하고 있으며, 이 일은 사카이 사에몬노조(酒井左衞門尉)가 잘 알고 있다는 것이었다. 이 일로 결국 사부로님은 죽음을 명받았다.

원문
岡崎三郞君天正七年二股の城にて自殺御座しましける事は、信長より叛逆の志有りて勝賴に內通し、二股の城へ甲斐の兵を引き入るべきとの三郞謀あり。此の事は酒井左衞門尉よく存知たりと告げ申されしより事起りて、遂に死を賜りぬ。

원문(일본어) 쪽 e108.p01

노부나가는 타다츠구(忠次)를 불러, 사부로님의 정실(北の方)이 알려 온 열두 가지 악행이 사실인지 물었다.[역주: 사부로님의 정실은 노부나가의 딸 토쿠히메(徳姫)다. 남편의 행실을 친정아버지에게 알린 것이다.] 타다츠구는 전에 사부로님의 시녀인 오후(おふう)라는 미인을 몰래 자기 첩으로 삼은 일로 사부로님의 원망을 깊이 사고 있었기에, 사부로님을 변호하지 않았다고 한다. 또 다른 설에 따르면, 사쿠마 우에몬노조 노부모리(佐久間右衞門尉信盛)가 미카와(三河)에 왔을 때 도쇼구(東照宮,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그를 대접하며 사부로님을 불러 인사를 시켰다. 사쿠마가 노란 솜 모자(綿帽子)를 쓰고 있자 사부로님이 그것을 낚아채 내던지며 "무례하다" 하고 화를 냈다. 도쇼구가 놀라자 사부로님은 "나는 노부나가의 사위다" 하고 말했다. 사쿠마는 무례를 사과했지만, 이 일 때문에 노부나가에게 참언했다고도 한다. 사부로님은 용맹하고 몹시 거친 성품이어서, 전장에 나서면 안색이 바뀌고 머리털까지 곤두설 듯이 보였다. 도쇼구는 이를 보고 "마리시텐(摩利支天) 상을 닮았다" 하고 말했다고 한다.[역주: 마리시텐은 무사들이 수호신으로 섬긴 불교의 신이다.]

원문
忠次を信長召し寄せて、三郞君の北の方より告げ申されし十二條の惡事を擧げて忠次に問はれしに、忠次是れより前三郞君の侍女、おふうと言ひし美人を密に己が妾とせし事によりて、三郞君憤深かりければ、陳謝の事に及ばずと言へり。又一說に、佐久間右衞門尉信盛三河に參りけるに、東照宮御馳走有りけるが、三郞君を召され御對面有りしに、佐久間黃なる綿帽子を冠り居たるを、三郞君引奪ひて投げ棄て、無禮なり、と怒らせ給ふ。東照宮驚き思召しけるに、三郞君、我は信長の婚にてこそあれ、と仰せられしかば、佐久間無禮を謝し申せしが、是れも信長に讒言せし故とも言へり。三郞君は勇氣逞しく極て物暴く御座まして、軍に臨みて氣色變り髮毛も逆に立つべく見えしを、東照宮御覽じて、摩利支天の像に似たり、と仰せ有りしとぞ。

원문(일본어) 쪽 e108.p02

히라이와 시치노스케 치카요시(平岩七之助親吉)는 사부로님의 후견인이었다. 그는 "신이 간언하지 못한 죄를 물어 저를 처형하고 그 목을 노부나가에게 보내십시오. 사부로님은 옥에 가둬 두고 때를 기다리십시오" 하고 아뢰었다. 도쇼구는 "네 충심은 참으로 말로 다할 수 없다. 그러나 잘 헤아려 보아라. 무용이 나보다 낫다고 여기는 아들을 죽이는 것은 차마 못 할 일이다. 하지만 네 목을 노부나가에게 보낸다 해도, 이미 우리 집안의 중신 사카이가 노부나가에게 끝까지 나쁘게 말한 듯하니 들어주지 않을 것이다. 너까지 죽인다면 그야말로 수치 위에 수치, 손해 위에 손해가 될 것이다" 하고 말했다고 한다. 세월이 흘러 타다츠구가 눈병으로 오래 집에 틀어박혀 있다가 어전에 나와 "저도 이제 늙었습니다. 제 아들을 잘 돌봐 주십시오" 하고 아뢰었다. 도쇼구는 "노부야스가 살아 있었다면 이토록 마음을 쓰지 않아도 되었을 텐데. 너도 자식 아까운 줄은 아는 모양이구나" 하고 말했고, 타다츠구는 아무 말도 못 하고 물러났다고 한다.

또 언젠가 고와카다유(幸若大夫)가 「만주(滿仲)」를 춤추는 것을 듣고 도쇼구가 "「만주」 춤은 오쿠보가 차마 보지 못할 것이다" 하고 말하자, 오쿠보 타다요(大久保忠世)도 집에 틀어박혔다.[역주: 「만주」는 고와카마이(幸若舞) 곡목으로, 미나모토노 미츠나카(源滿仲)가 아들을 죽이라 명하자 가신이 제 아들을 대신 죽게 해 주군의 아들을 살린 이야기다.] 도쇼구가 사부로님을 타다요에게 맡겼을 때, 타다요가 틀림없이 몰래 데리고 나가 외진 산속에 숨겨 주리라 여겼는데 그러지 않았기 때문이다. 도쇼구는 사부로님 일을 후회하면서도 입 밖에 내지는 않았지만, 여러 해가 지나서도 일이 있을 때마다 슬픈 기색을 보였다고 한다.

원문
平岩七之助親吉は三郞君の傅なりしかば、臣が諫め申さざる罪を以て死刑に行れ、首を信長に贈り、三郞君をば獄に押籠め置いて、時を御待ちあれ、と申しけるを、東照宮、汝が忠心は誠に言ふべき詞も非ざれ共、よく察せよ。武勇我に勝れりと思ふ子を殺すは忍びざるの至なり。汝が首を信長に贈るとも、旣に吾が家の長臣酒井が信長に飽くまで惡く言ひつると覺えたれば、なかなか聞き入れられじ。汝を殺さば恥の上の恥損の上の損とは是なるべし、と仰せられけるとぞ。其後年經て忠次目を煩ひて久しく引籠りたりしが、御前に出で、年老候ひぬ子を不便にせさせ給へ、と申しけるを聞召し、信康生きて有るならば斯許心を勞すまじきに、汝も子の不便なる事を知りたるが怪しき、と仰せられしかば、言無くて退出したるとなり。又或時幸若大夫が滿仲を舞ひたりしを御聞き有りて、滿仲の舞は大久保は得見まじ、と仰せられしかば、忠世も引籠りけり。之は三郞君を忠世に御預け有りしに、定めて引き具し參らせて片陰の山林に身をひそめなんと思召けるに、然は無かりける故、三郞君の御事を悔ませ給ふ折々御詞には出ざれ共、事に觸れ數年の後も愁傷の色現れさせ給ひけるとぞ。

원문(일본어) 쪽 e108.p03

번역: historyfoli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