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마키(小牧) 전투 때 사카키바라 야스마사(榊原康政)는 히데요시(秀吉)를 비방하여 "오다(織田) 가문을 향해 활을 당기는 것은 불의와 악역의 극치다" 하고 팻말에 써서 곳곳에 세웠다. 히데요시는 이를 갈며 노하여 "야스마사의 목을 가져오는 자에게는 10만 석의 땅을 주겠다" 하고 널리 알렸다. 그 뒤 도쇼구(東照宮, 도쿠가와 이에야스)와 화평을 맺고 혼인 약속이 이루어졌다. 히데요시가 "첫 사자로는 야스마사를 보내 주시오" 하고 청하여 야스마사가 교토에 올라가자, 히데요시는 그를 만나 이렇게 말했다. "코마키에서 팻말을 세웠을 때는 네 괘씸한 목을 한번 보고 싶은 생각뿐이었다. 그런데 이제 이렇게 화친하게 되고 보니 오히려 네 그 뜻이 기쁘다. 이 말을 직접 하려고 너를 불렀다. 코헤이타(小平太)라고 부르는 것은 어울리지 않는다. 서작(敍爵, 관위를 내림)하는 것이 마땅하다." 그리하여 시키부노타이후(式部大輔)라는 칭호는 이때부터 쓰게 되었다. 그러고는 향응을 베풀어 두텁게 대접했다고 한다.
원문
小牧陣の時榊原康政、秀吉の事を誹りて札に書き、織田家に向ひて弓を引く事、不義惡逆の至りなり、と書きて所々に立たるを、秀吉齒嚙して怒り、康政が首を取らん者には十萬石の地を與へん、とぞ觸れられける。其後東照宮と和平して婚姻の約有りける。始の使に康政を賜はるべし、と秀吉申されて京に上りしに、秀吉對面し、小牧にて札を立てたる時、汝が惡き首を一目見ん事をのみ思ひしに、今斯和睦に及べば其志を悅び思ふなり。此事を直に言はんが爲に迎へたり。小平太と呼ばんは如何なり。敍爵然るべし、とて式部大輔とは此時よりぞ申しける。偖饗禮有りて厚く馳走有りけるとぞ。