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일 미시(未の刻, 오후 2시 무렵)의 일이다. 도시이에는 "스에모리는 물이 모자라다. 히로오카(廣岡)의 물을 길어 소라 껍데기에 담아서 서둘러 뒤따라오너라. 구원 가는 선물로 삼겠다" 하고 명했다. 또 같은 가가의 마츠토(松任)라는 곳은 가나자와에서 3리쯤 떨어진 토시나가의 거성이었으므로 "서둘러 스에모리로 향하라" 하고 전했다.
가나자와에서 4리쯤 되는 츠바타 성으로 서둘러 다가가자, 동생 우콘 히데츠구(右近秀繼)가 성곽 밖으로 마중 나와 "토시나가를 기다리시겠습니까" 하고 물었으므로 성으로 들어갔다. 토시나가는 술시(戌の刻, 오후 8시 무렵)쯤 츠바타에 닿았다. 도시이에는 기뻐하며 큰 소리로 외쳤다. "나는 나리마사와 젊은 시절부터 여러 번 싸움터를 함께했지만, 나리마사가 이 도시이에를 앞지른 적은 한 번도 없다. 그렇다고 나리마사를 깔볼 수는 없지만, 앞뒤 가리지 않고 한판 붙어 이기는 것은 손바닥 안에 있다." 그렇게 기세를 올리며 나아가려는데, 데라니시 지헤에 뉴도(寺西治兵衞入道)가 우콘과 의논해 아뢰었다. "스에모리는 벌써 떨어졌을 것입니다. 게다가 가와시리에서는 진보가 많은 군사로 길을 막고 있다고 하니, 구원은 어찌하시겠습니까." 도시이에는 크게 화를 냈다. "비겁한 간언은 결코 입 밖에도 내지 말라. 사람의 목숨은 한 대에 그치지만 이름은 만대에 남는다고 했다. 오쿠무라와 도이를 버려 죽게 하고 나면, 설령 일본의 주인이 된다 해도 이 수치는 씻을 수 없다. 나리마사가 대군이라면 대군이라도 좋다. 내 우마마와리만으로도 시원하게 싸워 승부를 내기에 모자람이 없다. 무라이, 너는 어떻게 생각하느냐. 나는 반드시 한판 싸우기로 마음을 정했다." 그 말을 듣자마자 마타베에는 "싸우는 것 말고 따로 따질 것이 무엇이 있겠습니까" 하고 대답했다. 도시이에는 기뻐하며 "무라이의 마음도 나와 같다" 하고 곧 떠나려 했다.
그러자 우콘이 오차즈케(茶漬飯)를 내오며 "마침 솜씨 좋은 점쟁이 야마부시(山伏, 산에서 수행하는 승려)가 있습니다. 불러서 싸움을 점쳐 보시겠습니까" 하고 물었다. 도시이에는 기분이 좋지 않았지만 "그래라" 하며 불러들였다. 쉰 살쯤 된 야마부시였다. 그가 품에서 책을 꺼내자 도시이에가 "어쨌든 구원하러 가기로 정했다. 잘 보아라" 하고 말했다. 야마부시는 책을 품에 도로 넣고 "오늘은 길일이고 시각도 좋은 시각입니다" 하고 말했다. 도시이에는 "너는 노련하구나. 곧 이기고 와서 상을 주겠다" 하며 흡족하게 떠나 기세 좋게 밀고 나아갔다. 무라이와 후와가 선봉, 하라 오키, 마에다 마타지로(前田又次郞), 가타야마 나이젠이 2진, 다노무라 사부로시로, 아오야마 요소베에(靑山與惣兵衞), 곤도 젠자에몬(近藤善左衞門), 마에다 케이지로(前田慶次郞)가 뒤를 이었다. 미야카와 다지마(宮川但馬)가 무샤부교(武者奉行, 군세를 감독하는 직)였다고 한다.
가와시리 이쪽으로 1리쯤 되는 다카마츠(高松)라는 곳에서 도시이에는 투구를 쓰고, 투구 끈이 남은 것을 잘라 버렸다. 사람들은 '그렇다면 오늘이 마지막 싸움이구나' 하고 살아 돌아갈 생각은 하지도 않았다. 도시이에의 측근 무사(近習) 시노하라 칸로쿠(篠原勘六)는 스물셋이었는데 가래톳(橫根)을 앓아 몸을 마음대로 움직이지 못했다. 그래도 꼭 따라나서겠다고 하자, 도시이에는 "너는 남아 있다가 내가 죽거든 성을 굳게 지키며 히데요시의 구원을 기다려라. 그래도 안 되거든 그때 할복하라" 하고 명했다. 그래서 남았으나, 가마를 타고 요리키(與力, 상급 무사에게 딸려 함께 싸우는 무사) 20기를 거느리고 가와시리 가까이에서 따라잡아 "시노하라 칸로쿠가 왔습니다" 하고 큰 소리로 외쳤다. 이를 들은 사람들은 "참으로 굳센 자다" 하고 입을 모았다.
가와시리 쪽에서는 츠바타에 사람을 붙여 살피게 했는데, 그가 달려 돌아와 "마에다 부자가 츠바타까지는 나왔지만 구원하러 올 것 같지는 않습니다" 하고 아뢰었다. 진보는 이 말을 듣고 크게 경계를 늦추었다. 도시이에는 선봉으로 말을 몰고 가서 무라이와 후와에게 "바닷가를 한 줄로 서서 말 혀를 묶고, 될 수 있는 대로 조용히 지나가라" 하고 명했다.[역주: 말이 울지 못하도록 혀를 묶는 것으로, 몰래 행군할 때 쓰던 방법이다.] 척후가 "진보가 군사를 내어 기다리고 있습니다" 하고 아뢰자, 다시 도미타 에치고(富田越後, 이때는 로쿠자에몬六左衞門이라 했다)를 척후로 보냈다. 그는 달려 돌아와 "적은 한 사람도 없습니다. 강에 박힌 말뚝이 많은 것을 사람으로 잘못 본 것이겠지요. 어서 밀고 나가십시오" 하고 아뢰었다. 도시이에가 "강 말뚝이라는 것은 무엇으로 알았느냐" 하고 묻자 에치고는 이렇게 대답했다. "그것 말씀입니까. 무사라면 늘어선 줄이 그렇게 고르게 맞을 리 없다고 보았습니다. 그래도 확실히 보려고 강 한가운데까지 말을 몰고 들어가 차분히 보았습니다. 이것을 잘못 보았다면 다시는 활과 화살을 잡지 않겠습니다." 도시이에는 "네가 본 것이 옳다. 무사의 본보기로 삼아라" 하고 기뻐했다.
그리하여 군사를 나아가게 해 지나가는데, 진보는 꿈에도 이를 몰랐다. 뒤늦게 알아차렸지만, 도시이에는 이마하마(今濱)라는 곳 오른쪽 위의 산에 군사를 붙여 진을 쳤다. 날이 밝자 도시이에는 말을 타고 돌며 "군량을 먹어라. 오늘 싸움은 틀림없이 이길 테니 마음 놓아라" 하고 명하니, 모두 말에서 내렸다. 여기서 보니 토시나가의 군사가 7, 8백쯤, 두 선봉이 1천 3백쯤, 하타모토가 1천 5백을 넘지 않았다. 도시이에는 "오늘 싸움에서 공을 세우는 자는 특별히 상을 주겠다. 혹 전사하더라도 그 자손을 결코 저버리지 않겠다" 하고 큰 소리로 명했다.
그러고 나서 산을 내려가 군사를 나아가게 하니 길이 두 갈래였다. 한 갈래는 스에모리로 가는 길, 한 갈래는 나리마사의 하타모토로 가는 길이었다. 무라이가 "츠보이야마로 밀고 가서 나리마사를 사로잡겠습니다" 하고 아뢰었다. 도시이에는 듣고 "옳은 말이지만, 나리마사는 틀림없이 험한 곳을 앞에 두고 진을 쳤을 것이다. 그저 스에모리로 달려가 적을 쫓아 무너뜨리고 성 안 사람들에게 힘을 실어 주는 것이 어떠냐" 하고 말했다. 무라이는 받들어 "그렇게 하시는 것이 옳습니다. 성 안의 무사들이 지금 하신 말씀을 들으면 얼마나 고마워하겠습니까" 하고 말했다.
머지않아 스에모리 가까이 밀고 들어가자, 무라이의 부하들이 적의 목을 많이 베어 왔다. 스에모리에서는 니노마루에 틀어박혀 있던 센슈 도노모노스케, 다키츠 킨에몬(瀧津金右衞門) 등이 공격해 들어오는 적을 몰아내며 힘껏 싸웠으나 전사자가 많이 났다. 혼마루도 이미 위태로워 보였지만, 오쿠무라 스케에몬은 조금도 기가 꺾이지 않고 버티고 있었다. 그때 모래 언덕(砂山) 쪽 아침 안개가 갠 틈으로 도시이에의 우마지루시(馬印, 대장의 위치를 알리는 표지)가 보이자, 성 안의 사람들은 힘을 얻어 이루 말할 수 없이 기뻐했다. 구원이 조금만 늦었더라도 성은 떨어졌을 것이다. 활로를 연 것은 오로지 도시이에가 재빠르게 군사를 움직인 덕분이었다.
무라이 마타베에와 다노무라 사부로시로를 비롯한 이들이 창을 찔러 넣으며 마구 싸웠는데, 나리마사 쪽 선봉 대장 삿사 요자에몬(佐々與左衞門)을 무라이가 찔러 쓰러뜨리자 무사 30여 명이 나란히 쓰러져 전사했다. 도시이에의 선봉이 요자에몬을 베고 함성을 지르며 몰아쳐 무너뜨리니 공격군이 패해 달아났다. 도시이에는 이를 보고 뒷문(搦手) 쪽으로 돌았다. 공격군 쪽에도 뛰어난 군사가 많이 남아 기다리고 있었으므로, 도시이에의 하타모토 50기쯤이 조용히 다가갔다. 그때 한다 한베에(半田半兵衞)가 맨 앞으로 나서서 "이치반야리" 하고 이름을 외치는 것을 사쿠라 진스케(櫻甚助)가 철포로 쏘았는데, 왼손에 맞아 한베에는 창을 끌어안고 쓰러졌다. 한베에와 진스케는 사촌 사이였는데, 진스케가 사시모노(指物, 등에 꽂는 깃발)를 보고 그를 알아보았다. 진스케도 "한베에가 살지 못하면 몹쓸 짓을 한 것이다" 하며 눈물을 흘렸다고 뒤에 전해졌다고 한다.
도시이에가 금박 종이를 찢어 단 사이하이(采配, 지휘채)를 잡고 "적의 철포가 거세다. 꾸물거리다가는 안 된다. 그저 덤벼들어 쫓아 무너뜨려라" 하고 명하자, 군사들은 거리낌 없이 앞다투어 덤벼들어 적을 밀어 무너뜨렸다. 공격군은 많이 죽고 패해 달아났으며, 가나자와의 군사들은 와 하고 승리의 함성을 올렸다.
도시이에는 성 안으로 말을 타고 들어가 맨 먼저 오쿠무라에게 말을 건넸다. "이번 농성의 활약은 말로 다할 수 없다. 이 도시이에가 아무리 마음을 썼더라도 네가 못난 자였다면 성을 내주었을 것이다. 또 함락당했다면 얼마나 원통했겠느냐. 이런 공명이 또 있겠느냐." 그렇게 그를 치켜세웠다. 그때 노무라 덴베에(野村傳兵衞)와 야마자키 히코에몬(山崎彥右衞門)이 서로 동시에 창을 맞댔다며 첫째와 둘째를 다투었다. 도시이에는 "한다가 맨 앞에 달려 나갔으나 운이 없어 깊은 상처를 입고 뜻을 이루지 못했다. 그래도 용사의 뜻은 드러났다. 두 사람이 동시에 창을 맞댔지만 덴베에가 이름을 외쳤으니 첫째는 노무라로 정한다" 하고 명하고, 두 사람에게 1천 석의 녹을 더해 주었다고 한다. 한베에는 상처가 낫자 2천 석을 주고 무사 15명을 요리키로 붙여 주었다.
나리마사의 하타모토에도 구원군이 왔다는 소식이 들어가자 "그렇다면 한판 붙자" 하며 8천쯤이 밀고 나왔다. 도시이에는 이를 보고 "지금 이 기세 오른 군사라면 적이 백만이라도 두려울 것 없다" 하며 선봉은 마타베에, 2진은 성주이니 오쿠무라, 3진은 후와 히코조로 정했다. 노토의 그 지방 무사 쵸 쿠로자에몬이 4, 5백쯤을 거느리고 달려왔다. 적인지 아군인지 분명하지 않아 척후를 보내 보니 쵸의 군사였다. 쵸는 "늦게 달려온 것이 원통하다. 무사의 운이 다했다" 하며 분해했다. 척후로 갔던 와키타 젠자에몬(脇田善左衞門)과 노무라 시치베에(野村七兵衞)가 이를 듣고 달려 돌아와 자세히 아뢰자, 도시이에는 쵸에게 크게 감탄했다. 모두가 저마다 쵸의 뜻을 칭찬하니, 도시이에는 "결코 늦은 것이 아니다. 작지 않은 명예다" 하는 글에 서약서를 붙여 쵸에게 주었다.
나리마사는 무슨 생각이었는지 내보냈던 군사를 거두어 산을 따라 물러갔다. 마침 무사 수행을 하러 와 있던 혼다 산야(本多三彌)는 "무작정 덤벼들어 나리마사를 베어야 하는데" 하고 말했지만, 사람들이 "용맹한 장수 나리마사이니 저렇게 가볍게 물러난 것이다" 하고 말해 뒤쫓지 않고 그만두었다. 벤 목은 753이었다고 한다.
도시이에는 나리마사가 성을 함락하지 못하고 헛되이 물러가는 것에 화를 내면서도 "물러나는 척하다가 츠바타 성으로 밀고 올지도 모른다" 하고, 오쿠무라를 성에 남기고 군사를 많이 두고서 스에모리를 떠났다. 군사가 잇달아 더해져 1만쯤이 되었다. 다시 후와와 무라이를 선봉으로 삼아 바닷가로 나아가 츠바타로 들어갔으나, 나리마사는 츠바타로 밀고 오지 않고 물러갔다. 삿사의 군사가 금빛 노시 모양의 사시모노를 달고 있어서 츠보이야마가 온통 번쩍여 보였는데, 도시이에는 이를 바라보며 "참으로 훌륭한 진용이구나. 머지않아 나리마사를 멸하고 저 사시모노를 우리 군사들에게 꽂게 하겠다" 하고 말했다고 한다. 히데요시는 이 승리를 듣고 "일본에 견줄 데가 드문 무공이다" 하고 칭찬했다고 한다. 도시이에는 오쿠무라에게 그날 들게 했던 우마지루시와, 금박 종이를 찢어 단 사이하이를 매단 갑옷을 내려 그의 공을 기렸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