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사시(武州) 하치오지(八王寺) 성주 호조 무츠노카미 우지테루(北條陸奧守氏昭)는 오다와라(小田原)에 가 있고 가신들이 성을 지키고 있었다. 마에다 도시이에(前田利家)와 우에스기 카게카츠(上杉景勝)는 이 성을 치려고, 먼저 항복한 호조 우지쿠니(北條氏邦)를 시켜 성으로 사자를 보내 "오다와라는 이미 무너졌다. 어서 성을 내주어라" 하고 전했다. 나카야마(中山), 곤도(近藤), 가노(狩野) 등은 따르지 않고 이렇게 대답했다. "우지테루가 항복했다면 우리에게 증서를 내려 성에서 나오라고 명했을 것이다. 그렇지도 않은데 항복한다면 무사의 흠이다. 우지쿠니 같은 겁쟁이는 성 안에 한 사람도 없다." 도시이에와 카게카츠도 그 의리에 감탄했지만 그만둘 수는 없었으므로 1만 5천의 군사로 성을 에워쌌다.
아마카스 키요나가(甘糟淸長)가 쳐들어가 불을 질렀다. 가노 잇안(狩野一庵), 곤도 데와 스케자네(近藤出羽助實), 가네코 사부로에몬 이에시게(金子三郞右衞門家重)는 죽기로 쳐 나와 싸우다 전사했다. 요코지 겐모츠(橫地監物)는 우지테루의 으뜸가는 중신이었다. 불길이 치솟자 오늘이 마지막이라며 마구 싸웠으므로 공격군에서 죽은 자가 많았다. 나카야마 가게유 이에노리(中山勘解由家範)는 무용이 뛰어난 장수로, 특히 하치조 슈리 미츠토모(八條修理滿朝)의 마술(馭法)을 이어받아 간토(關東)에서 견줄 자가 없다고 일컬어지던 사람이었다. 그는 큰 적에게 조금도 움츠러들지 않고 2백쯤을 거느리고 쳐 나가 여기가 마지막이라며 칼을 휘둘렀으나, 공격군이 새 군사를 번갈아 넣으며 몰아치자 겨우 15, 16명만 남았다.
도시이에가 "누구 나카야마와 연고가 있는 자가 없느냐" 하고 묻자, 마츠야마(松山)에서 항복한 네기시 가즈에 사다나오(根岸主計定直)의 아내가 나카야마의 아내와 자매 사이이고, 고이와이 우타노스케(小岩井雅樂助)는 나카야마에게 마술을 배운 제자라고 아뢰었다. 도시이에는 "어서 나카야마에게 우리 편이 되라고 전하라" 하며 두 사람을 성 안으로 들여보냈다. 그러나 나카야마는 이미 자결했고 그 아내도 자결했는데, 아직 숨이 붙어 있었으므로 몇 마디 말을 나누고 달려 돌아와 이를 알리니 도시이에는 몹시 아까워했다. 겐모츠는 포위를 뚫고 달아났다.
호조 가문의 간토 성이 많았지만 이즈(豆州)의 니라야마(韮山) 성 말고는 대부분 항복했는데, 하치오지의 군사는 성을 베개 삼아 싸우다 죽었다. 도쇼구(東照宮,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이를 듣고 그 의리에 감탄해, 나카야마의 맏아들 스케로쿠로 테루모리(助六郞昭守)와 둘째 아들 사스케 노부요시(左介信吉)에게 녹을 내렸다. 테루모리의 아들 노부모리(信守)는 오사카(大坂) 싸움에서 공을 세웠다. 노부요시는 뒤에 미토 주나곤(水戶中納言)을 섬겨 비젠노카미(備前守)라 칭했다. 가노 카즈히로(狩野一廣)의 아들 슈젠(主膳)도 도쿠가와 가문을 섬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