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토 카즈에노카미 기요마사(加藤主計頭淸正)와 고니시 셋츠노카미 유키나가(小西攝津守行長)가 저마다 히고(肥後)를 반씩 받았을 때 잇키(一揆, 무장 봉기)가 일어났다. 아마쿠사(天草) 영지는 섬인데, 잇키의 기세가 몹시 거셌다. 고니시가 시키(志岐) 성을 치자, 아마쿠사 키도(木戶)의 잇키 우두머리 아마쿠사 민부(天草民部)가 성을 치는 고니시 군의 뒤를 덮치려고(後卷) 몰려와 시키 동쪽 산에 진을 쳤다. 기요마사의 선진인 야마오카 도아미(山岡道阿彌), 오카다 쇼겐(岡田將監), 난부 무에몬(南部無右衞門), 오노기 오리베(小野木織部), 타키노 산미(瀧野三位), 쇼바야시 하야토(莊林隼人), 모리모토 기다유(森本義大夫)가 차례로 나아갔다. 기요마사가 이카루가 헤이지(鵤平次)를 보내 선진을 살펴보게 했는데 돌아오지 않았다. 다시 이이다 카쿠베에(飯田覺兵衞)를 보내니, 이이다는 형세를 꿰뚫어 보고 돌아왔다. 헤이지가 "이제 곧 싸움이 시작될 것이니 앞으로 나아가 싸움에 끼겠소" 하자, 이이다는 "모르는 일은 말하지 마시오. 선진은 이제 곧 밀려날 것이오. 여기는 싸움에 낄 자리가 아니오" 하고 헤이지를 데리고 돌아왔다. 기요마사가 "어떠하냐?" 하고 묻자 이이다는 "선진은 이제 곧 져서 적이 뒤쫓아 올 것입니다. 두 번째 승리는 하타모토(旗本, 대장 곁을 지키는 본진)의 몫입니다" 하고 아뢰었다. 기요마사가 "그 증거는 무엇이냐?" 하고 물었다. "적이 동쪽 산에 진을 쳐서 지리의 이로움을 얻었습니다" 하고 말을 채 마치기도 전에 선진이 무너지고 잇키 무리가 곧장 들이닥쳤다. 기요마사는 높은 곳에서 옆구리를 찌르듯 덮쳐, 패주하는 아마쿠사 민부를 3리쯤 뒤쫓아 쳤다. 기요마사는 십자창(十文字の鎗)이 부러지도록 찌르며 일곱 번 창을 맞댔고, 그 기세를 타서 시키 성을 쳐서 떨어뜨렸다. 기요마사의 창은 십자창으로 초승달 모양이었다. 시즈(志津)가 만든 것이었는데, 찌르다 부러져 한쪽 날만 남은 가타카마(片鎌)가 된 칼날을 주워다 부츠키자카(佛木坂)의 신궁(神宮)에 바쳤다고 한다. 창의 칼집은 곰털로 되어 있었는데, 학질을 앓는 사람이 있으면 그 털을 한 올 뽑아 받들게 하니 곧 병이 떨어졌다고 전한다. 조선 사람들은 지금까지도 어린아이가 울 때 "귀장군(鬼將軍)이 온다" 하면 울음을 그친다던가. 이만한 맹장은 참으로 드물다.
가토 기요마사가 아마쿠사의 잇키를 물리친 일
에도 시대 중기 오카야마번의 유학자 유아사 조잔(湯浅常山)이 센고쿠~에도 초 무장들의 일화를 모은 『조잔키단(常山紀談)』(1739년 자서)의 한국어 번역이다. 후대에 전해진 이야기를 모은 책이라 역사적 사실과 다른 대목이 있다.
加藤主計頭淸正、小西攝津守行長各肥後半州を賜はりしに一揆起る。天草領は島にて一揆の勢甚盛なり。小西志岐城を攻めけるに、天草木戶の一揆の長天草民部後卷に押寄せ、志岐の東の山に陣す。淸正の先陣山岡道阿彌、岡田將監、南部無右衞門、小野木織部、瀧野三位、莊林隼人、森本義大夫段々に進む。淸正鵤平次をして先陣を見せしむるに歸らず。又飯田覺兵衞を遣られしに飯田見切つて歸る。平次、只今軍始らん先に進みて戰に逢ん、と云ふ。飯田、知らぬ事は言ふまじきよ。先陣只今追立てられん。戰に逢ふ場に非ず、とて連れて返る。淸正、如何に、と問るゝに、飯田、先陣は今打負けて敵追駈け來らん。二の勝は旗本に候、といふ。淸正、證は如何に、と問ふ。敵東の山に陣し地の利を得たり、と言ひも果ぬに、先陣敗北して一揆驀地に懸り來る。淸正高き處より橫合に突いて懸り、天草民部敗軍せしを三里許追討にしたり。淸正十文字の鎗を突折り、七度鎗を合せ、其勢に乘じて志岐の城を攻落されけり。淸正の鎗は十文字にて三日月の形なり。志津の作なりしが突折りて片鎌と成りし刄を拾取りて、佛木坂の神宮に納めしとぞ。鎗の鞘熊毛なりしに、瘧煩ふ人有れば、其毛一筋拔きて戴かするに、忽落ちけると言傳ふ。朝鮮人は今に至るまで、小兒の啼く時鬼將軍來ると云ひて啼止みけるとかや。かばかりの猛將類稀なる事なり。
번역: historyfoli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