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에서 기요마사(淸正)가 전주(全州)에 있을 때의 일이다. 부산해(釜山海)에서 10리 남짓 되는 길에 일본 군병이 성들을 지키며, 7, 8리 또는 10리쯤마다 서로 잇닿은 성을 두었다. 타이코(太閤,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기요마사를 불렀으므로 기요마사는 일본으로 돌아가려고 길을 떠났다. 도다 민부노쇼유 타카마사(戶田民部少輔高政)는 밀우(密隅)에 있었는데, 기요마사와 옛 벗이었으므로 대접할 채비를 하고 기다리면서, 사무라이다이쇼(士大將, 한 부대를 이끄는 무사 대장) 마나베 고로자에몬(眞鍋五郞左衞門)과 카미야 헤이에몬(神谷平右衞門)을 길 중간까지 마중 보냈다. 4리쯤 나가자 기요마사의 선진이 보였다. 그 무렵에는 사방에 적이 없어 평온했다. 두 사람 모두 가죽 하오리(羽織, 겉옷)에 하카마(袴) 차림으로 나갔는데, 기요마사의 군병은 모두 갑옷을 입고 도시락(簞食)을 차고 깃발을 세웠으며, 총신을 갈아 윤을 낸 철포 5백 자루를 맨 앞에 세우고 철포에는 화승(火繩)을 끼워 불을 붙여 두었다. 기요마사는 다메누리(溜塗, 붉은 바탕에 투명한 옻칠을 덧입힌 칠) 갑옷에 은빛 나가에보시(長烏帽子, 위로 길게 솟은 에보시 모양) 투구의 끈을 매고, 호아테(頰當, 뺨가리개)와 스네아테(脚當, 정강이가리개)를 하고 짚신을 신었으며, 은빛 아홉 갈래 바린(馬藺) 우마지루시(馬印, 대장의 위치를 알리는 표지)를 손수 등에 꽂고, 츠키게(月毛, 엷은 황백색 털빛) 말에 흰 거품을 물리며 왔다. 두 사람이 말에서 내려 맞이하자 기요마사가 보고 말했다. "민부가 보낸 마중 사자들, 수고가 많소. 곧 그리로 가서 진을 치겠소. 다들 몹시 때가 꼈으니, 목욕물을 데워 아랫사람들까지 씻게 해 주시면 더없이 기쁘겠소. 이 뜻을 어서 돌아가 전해 주시오." 두 사람은 "알겠습니다" 하고 말에 올라 서둘러 돌아가 그대로 전했다. 머지않아 기요마사가 도착하여 헤이주몬(屏重門)으로 들어왔다. 툇마루에서 민부의 측근 무사 두 사람이 다가가 기요마사가 꽂고 온 바린을 받아 깃발 걸이(旗籬)에 세웠다. 기요마사가 툇마루에 오르려고 짚신 끈을 풀고 스네아테 끈을 풀 때, 허리에 차고 있던 붉은 돈스(曇子, 두꺼운 비단) 주머니를 객실에 던져 넣으니 쿵 하고 떨어졌다. 쌀 서 되쯤에 된장과 은전 3백 문이 들어 있었다. 우마지루시를 등에 꽂으려면 이것으로 허리의 균형을 맞추는 것이 좋다는 것이었다. 민부가 놀라 "10리 안에 적도 없는데 이게 어찌 된 일이오?" 하고 묻자, 기요마사는 이렇게 대답했다고 한다. "무슨 일이든 큰일로 여기는 것이 좋소. 방심이 큰 적이라는 말이 있소. 나도 갑옷을 벗고 몸을 편히 하고 싶지만, 그렇게 하면 모두 해이해질 것이오. 그래서 몸은 괴로워도 해이함이 없도록 이렇게 하는 것이오. 만일의 일이 생겼을 때 해이해져서 일을 그르친다면, 지금까지 쌓은 무명(武名)이 헛된 이름이 될 것을 염려하기 때문이오. 무릇 아랫사람은 윗사람을 본받는 법이라, 대장이 느슨해지면 아랫사람은 크게 게을러지니, 늘 진법(陣法)을 엄하게 하는 것이오. 윗사람 한 사람의 마음이 아래의 만민에게 통한다는 말도 있지 않소."
기요마사의 군비가 엄중했던 일
에도 시대 중기 오카야마번의 유학자 유아사 조잔(湯浅常山)이 센고쿠~에도 초 무장들의 일화를 모은 『조잔키단(常山紀談)』(1739년 자서)의 한국어 번역이다. 후대에 전해진 이야기를 모은 책이라 역사적 사실과 다른 대목이 있다.
朝鮮にて淸正全州に在る時、釜山海より十里餘の程、日本の軍兵城々を守りて、七八里或は十里許にて件の城を設けたり。淸正を太閤呼れしかば、日本に歸るとて打立たれけり。戶田民部少輔高政密隅に有りて淸正と舊友なれば、饗すべき用意して待たれしが、士大將眞鍋五郞左衞門、神谷平右衞門を途中まで迎とす。四里許出づれば淸正の先陣見ゆ。其頃は四方に敵無く無事なり。二人とも革羽織袴にて出でたるに、淸正の軍兵皆物具して簞食附け旗を張り立て、磨筒の鐵炮五百挺眞先に押て、鐵炮には火繩を挾み火を附けたり。淸正は溜塗の物具銀の長烏帽子の冑の緒をしめ、頰當脚當して草鞋をはき、銀の九本馬藺の馬印を自ら背に指し、月毛の馬に白泡嚙ませて來れり。二人馬より下て迎へけるを、淸正見て、民部よりの迎の使者骨折なり。早くそれへ著陣せん。殊外に人々垢附きぬ、風呂をたて下々まで湯を賜はりなば大慶ならん。此由疾く歸りて申されよ、と詞を懸らる。二人、承り候、とて馬に乘り、急ぎ歸りて斯くといふ。程無く淸正著陣せられ、屏重門より入る。椽にて民部近習の士二人寄りて、淸正の指されし馬藺を取つて旗籬に立つる。淸正椽に上らんと草鞋の紐を解き脚當の緒を解く時、淸正腰に附けたる緋曇子の袋を座敷へ投入れたるに、どうと落つる。米三升許に味噌銀錢三百文入れられたり。馬印を指すに腰の釣合是にて能し、となり。民部驚きて、十里近きに敵も無くて如何なる事ぞ、と言へば、淸正、ものは大事と心得たるぞよき。油斷大敵といふ事有り。我物具せず身を安じ度くは思へども、左有らんには皆懈るべし。夫故に身は苦しけれども懈無き爲に斯くはせしなり。萬一の事有らん時懈りて事を仕誤るならば、今迄の武名虛名にならん事を慮ればなり。凡上を學ぶ下とて、大將寬げば下は大に怠るものなれば、常々陣法を嚴にする事に候。上一人の心下萬民に通ずるとかいふ事の有るよ、と答へられけるとぞ。
번역: historyfoli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