常山紀談원문 데이터베이스

목차 › 卷之十一 › e280

다니 다이젠이 무용을 떨치고 전사한 일

· 卷之十一 제17화 · 원문(일본어) 쪽

에도 시대 중기 오카야마번의 유학자 유아사 조잔(湯浅常山)이 센고쿠~에도 초 무장들의 일화를 모은 『조잔키단(常山紀談)』(1739년 자서)의 한국어 번역이다. 후대에 전해진 이야기를 모은 책이라 역사적 사실과 다른 대목이 있다.

덴쇼(天正) 6년(1578) 히데요시(秀吉)가 하리마(播州) 미키(三木)의 벳쇼 나가하루(別所長治)를 칠 때, 다니 다이젠(谷大膳)은 하마테(濱手, 해안 쪽)의 대장이었다. 전부터 히데요시는 다이젠을 요리키(寄騎, 상급 무사에게 딸려 함께 싸우는 무사)로 삼기를 바랐으나 노부나가(信長)가 허락하지 않고 지원군(加勢)으로 보냈다. 다이젠은 적 기마 무사 셋과 말 위에서 창을 맞대어 모두 베었다. 히데요시가 "어서 가사노마루(かさの丸)〔데마루(出丸, 본성 밖에 내어 쌓은 성곽)의 이름이다〕를 공격하시오" 하고 말하자, 다이젠은 "성이 견고하여 쉽게 빼앗기 어렵습니다" 하고 대답했다. 히데요시가 "평소 용맹으로 이름 높은 다이젠이 작은 성 하나를 깨뜨리지 못한단 말이오?" 하고 쏘아붙이니 다이젠도 성을 냈고, 히데요시도 금방이라도 칼을 뽑을 듯했다. 그러자 다케나카 한베에(竹中半兵衞)가 가로막아 서서 "싸움터의 승부에야말로 힘을 다해야 할 터인데 이게 무슨 일입니까" 하고 말했고, 하치스카 히코에몬(蜂須賀彥右衞門, 하치스카 고로쿠 마사카츠)도 와서 히데요시의 말고삐를 잡아 밀어 돌려보냈다.

밤이 되자 히데요시는 술과 안주를 들려 다이젠의 진영으로 가서 "오늘의 무공은 뛰어났소. 아까 말다툼은 내 잘못이니 후회가 이만저만이 아니오" 하며 매우 정답게 대했다. 그 뒤 다이젠은 수하 군사를 이끌고 가사노마루로 쳐들어갔다. 성안에서도 이곳이 중요하다 하여 막으며 화살과 돌을 쏘아 댔으나 다이젠은 조금도 굴하지 않았다. 무사 50기와 보병 200명가량으로 첫째 성문 어귀를 밀어 깨뜨리니, 다치고 죽은 자가 이루 셀 수 없었다. 공격군이 잇달아 밀어붙이자 다이젠은 거침없이 성 안으로 뛰어들었지만 여러 군데 상처를 입고 주저앉았다. 그때 진홍색(猩々緋) 하오리(羽織, 겉옷)를 걸친 승려 무사 하나가 발길을 돌려 다이젠에게 다가왔다. 다이젠이 "나는 지쳤다. 가까이 와서 내 목을 베어 공을 세워라" 하자, 승려 무사가 달려들어 칼을 내리쳤다. 다이젠은 적의 구사즈리(草摺, 갑옷 허리 아래 드리운 자락)를 움켜잡아 끌어당기고는 와키자시(脇差, 허리에 차는 짧은 칼)를 뽑아 깊이 찔렀다. 그 순간 벳쇼 가문의 사무라이다이쇼(士大將, 한 부대를 이끄는 무사 대장) 유이 고헤에(由井小兵衞)가 이름을 외치며 되돌아 달려와 다이젠을 베었다. 그 사이 열일곱 살이던 다이젠의 적자 데와노카미(出羽守)가 달려와 유이에게 연거푸 칼을 휘둘러 땅바닥에 쓰러뜨리고, 올라타 목을 베었다. 그 목을 들고 아버지에게 돌아왔으나 다이젠은 이미 숨이 끊어져 있었다. 데와는 아버지의 시신을 진영으로 옮기고, 벤 목을 히데요시의 쿠비지켄(實撿, 수급 확인 의식)에 바쳤다. 히데요시는 다이젠이 전사했다는 말을 듣고 "시신으로라도 대면하겠다" 하고 진영으로 가서 "아까운 사람을 죽게 했구나" 하며 눈물에 목이 메었다.

원문
天正六年秀吉播州三木の別所長治を擊つ時、谷大膳は濱手の大將たり。兼て大膳は寄騎にと秀吉望まれしか共、信長許されずして加勢たらしめらる。大膳、敵三騎と馬上にて鎗を合せ皆討取りたり。秀吉、疾かさの丸出丸の名なり攻められよ、といへば、大膳、城堅固にして容易に攻取り難し、と答ふ。秀吉、日頃勇名高き大膳、小城一つ破り兼たるや、と詞を懸けられければ、大膳も怒り、秀吉も旣に刀の柄に手を懸くべき色なりしかば、竹中半兵衞立塞がり、戰場の勝負こそ力を盡すべきに如何なる事ぞ、といふ處に、蜂須賀彥右衞門も來りて秀吉の轡を取て押返す。夜に入りて秀吉酒肴を持たせて大膳が陣屋に至り、今日の武功拔群なり。先の問答は我過にて、後悔大方ならず、とて懇情甚し。其後大膳手勢を率てかさの丸へ攻めかゝる。城中も此處を大事と防ぎ、矢石を打出せども大膳少しもひるまず。士五十騎步卒二百許、一の城戶口を押破りたれば、手負死人數を知らず。寄手押續けば大膳念なく乘破りたるが、數ヶ所手を負ひて踞き居たる所に、法師武者猩々緋の羽織著たるが、引返して大膳に向ふ。大膳、吾疲れたり。近寄りて首を取つて高名にせよ、と言ふを聞き、走懸りて一太刀打つ。大膳敵の草摺を取つて引寄せ、脇差を抽きて刺貫く處に、別所が士大將由井小兵衞、と名乘りて引返して馳來り、大膳を一太刀斬りたり。斯る處へ大膳が嫡子出羽守十七歲なるが走寄つて、疊みかけて由井を打つて芝居に打据ゑ、押へて首を取り父に向へば、大膳は息絕えたり。出羽は父の死骸を陣屋に入れ、取りたる首を秀吉の實撿に備ふ。秀吉大膳が討死せし由を聞きて、せめて死骸になりとも對面せん、とて陣屋に行き、惜き人を討たせけるよ、とて淚に咽ばれけり。

원문(일본어) 쪽 e280.p01

히데요시의 가보(家譜)에 실린 것과는 크게 다르다. 그러나 이 이야기는 다니 가문에 전해 온 설이라고 하니, 가보가 잘못되었을 것이다.

원문
秀吉家譜に載せたるとは大に異れり。然れども此一條は、谷の家に傳へたる說なる由なれば、家譜は誤なるべし。

원문(일본어) 쪽 e280.p02

다이젠은 오미(江州) 이누카미군(犬上郡) 사람으로, 노부나가를 섬겨 가와지리 히고노카미(川尻肥後守), 이나바 이요노카미(稻葉伊豫守)와 함께 군사 회의(評定)에 참여하는 사람으로 꼽혔다. 열네 살부터 마흔일곱 살까지 창을 맞댄 것이 아홉 번, 목을 벤 것이 열일곱 번이었다.

원문
大膳は江州犬上郡の人、信長に仕へて、川尻肥後守、稻葉伊豫守と同じく軍の評定の人に加へらる。十四歲より四十七歲まで鎗を合する事九度、首を取る事十七度なり。

원문(일본어) 쪽 e280.p03

번역: historyfoli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