덴쇼(天正) 6년(1578) 히데요시(秀吉)가 하리마(播州) 미키(三木)의 벳쇼 나가하루(別所長治)를 칠 때, 다니 다이젠(谷大膳)은 하마테(濱手, 해안 쪽)의 대장이었다. 전부터 히데요시는 다이젠을 요리키(寄騎, 상급 무사에게 딸려 함께 싸우는 무사)로 삼기를 바랐으나 노부나가(信長)가 허락하지 않고 지원군(加勢)으로 보냈다. 다이젠은 적 기마 무사 셋과 말 위에서 창을 맞대어 모두 베었다. 히데요시가 "어서 가사노마루(かさの丸)〔데마루(出丸, 본성 밖에 내어 쌓은 성곽)의 이름이다〕를 공격하시오" 하고 말하자, 다이젠은 "성이 견고하여 쉽게 빼앗기 어렵습니다" 하고 대답했다. 히데요시가 "평소 용맹으로 이름 높은 다이젠이 작은 성 하나를 깨뜨리지 못한단 말이오?" 하고 쏘아붙이니 다이젠도 성을 냈고, 히데요시도 금방이라도 칼을 뽑을 듯했다. 그러자 다케나카 한베에(竹中半兵衞)가 가로막아 서서 "싸움터의 승부에야말로 힘을 다해야 할 터인데 이게 무슨 일입니까" 하고 말했고, 하치스카 히코에몬(蜂須賀彥右衞門, 하치스카 고로쿠 마사카츠)도 와서 히데요시의 말고삐를 잡아 밀어 돌려보냈다.
밤이 되자 히데요시는 술과 안주를 들려 다이젠의 진영으로 가서 "오늘의 무공은 뛰어났소. 아까 말다툼은 내 잘못이니 후회가 이만저만이 아니오" 하며 매우 정답게 대했다. 그 뒤 다이젠은 수하 군사를 이끌고 가사노마루로 쳐들어갔다. 성안에서도 이곳이 중요하다 하여 막으며 화살과 돌을 쏘아 댔으나 다이젠은 조금도 굴하지 않았다. 무사 50기와 보병 200명가량으로 첫째 성문 어귀를 밀어 깨뜨리니, 다치고 죽은 자가 이루 셀 수 없었다. 공격군이 잇달아 밀어붙이자 다이젠은 거침없이 성 안으로 뛰어들었지만 여러 군데 상처를 입고 주저앉았다. 그때 진홍색(猩々緋) 하오리(羽織, 겉옷)를 걸친 승려 무사 하나가 발길을 돌려 다이젠에게 다가왔다. 다이젠이 "나는 지쳤다. 가까이 와서 내 목을 베어 공을 세워라" 하자, 승려 무사가 달려들어 칼을 내리쳤다. 다이젠은 적의 구사즈리(草摺, 갑옷 허리 아래 드리운 자락)를 움켜잡아 끌어당기고는 와키자시(脇差, 허리에 차는 짧은 칼)를 뽑아 깊이 찔렀다. 그 순간 벳쇼 가문의 사무라이다이쇼(士大將, 한 부대를 이끄는 무사 대장) 유이 고헤에(由井小兵衞)가 이름을 외치며 되돌아 달려와 다이젠을 베었다. 그 사이 열일곱 살이던 다이젠의 적자 데와노카미(出羽守)가 달려와 유이에게 연거푸 칼을 휘둘러 땅바닥에 쓰러뜨리고, 올라타 목을 베었다. 그 목을 들고 아버지에게 돌아왔으나 다이젠은 이미 숨이 끊어져 있었다. 데와는 아버지의 시신을 진영으로 옮기고, 벤 목을 히데요시의 쿠비지켄(實撿, 수급 확인 의식)에 바쳤다. 히데요시는 다이젠이 전사했다는 말을 듣고 "시신으로라도 대면하겠다" 하고 진영으로 가서 "아까운 사람을 죽게 했구나" 하며 눈물에 목이 메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