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岐阜) 성을 공격하는 군사 회의(軍評定) 때 고쿠세이코(國淸公, 이케다 테루마사)가 "오테(大手, 성의 정면)로 향하겠다"고 하자, 후쿠시마 사에몬다유 마사노리(福島左衞門大夫正則)가 듣고 "이번 선진(先陣, 맨 앞에서 싸우는 부대)은 바로 나요" 하며 다투었다. 이이(井伊, 이이 나오마사)와 혼다(本多, 혼다 타다카츠)가 테루마사에게 "나이후(內府,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인척이시니 양보하십시오" 하자, 마사노리는 오고시(尾越)에서 니시미노(西美濃, 미노 서부)로 들어가 오테로 향하고, 테루마사는 고다(河田)[역주: 독음 「고다」는 근거 없음.] 나루에서 쳐들어가기로 정해졌다. 얼마 뒤 마사노리가 말했다. "카라메테(搦手, 성의 뒤쪽)로는 내가 가겠소. 오고시는 성에서 멀고, 고다는 여울이 얕으니 말로 건너기 쉬울 것이오. 오테로 향하는 것도 성을 빨리 쳐부수기 위해서이니, 그저 카라메테로 쳐들어가고 싶소." 그러자 이이와 혼다가 말했다. "마사노리 님의 영지이니 오테 쪽에서 배와 뗏목으로 건너시는 일은 쉬울 것이오. 산자에몬노조(三左衞門尉, 테루마사)께서는 카라메테로 가시오. 이미 정한 이상 이제 와서 바꾸는 것도 옳지 않소." 마사노리는 "그렇다면 내가 적지에 들어가 신호 연기를 올린 뒤에 이케다 님은 강을 건너시오" 하고는 오테로 향했다. 때는 게이초(慶長) 5년(1600) 8월 21일, 아직 어두운 초저녁에 테루마사는 키요스(淸洲)를 떠나 고다 근처에 진을 쳤다. 날이 밝은 22일 새벽 강가로 밀고 나가니〔이토 고로에몬(伊藤五郞右衞門)이라는 자가 여울을 재 보았다고 한다〕, 기후에서 츠다 토자부로(津田藤三郞)를 비롯한 군세가 신카노(新加納) 마을로 나와 진을 쳤다. 아군 군병은 기세가 올라 당장 물살 빠른 강에 뛰어들 기색이었다. 테루마사가 말을 몰아 돌며 "조금만 더 기다려라" 하고 명했다. 이때 카이 후쿠에몬(貝福右衞門)이 "때가 되었습니다" 하고 아뢰자 테루마사는 "그렇다" 하고 말했다.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후쿠에몬은 소용돌이치는 물결 속으로 말을 확 몰아넣어 두세 칸(間)을 걸리고, 안장 위로 몸을 낮춰 소라고둥에 강물을 떠서 부어 내고는 있는 힘껏 높이 불었다. 호라(寶螺, 소라고둥 나팔) 소리가 여러 진에 울려 퍼졌다. 이에 모두가 한꺼번에 강에 뛰어들어 한 기도 남김없이 건너편 기슭에 올랐다.
기후성을 공격한 일
에도 시대 중기 오카야마번의 유학자 유아사 조잔(湯浅常山)이 센고쿠~에도 초 무장들의 일화를 모은 『조잔키단(常山紀談)』(1739년 자서)의 한국어 번역이다. 후대에 전해진 이야기를 모은 책이라 역사적 사실과 다른 대목이 있다.
정찰을 나갔던 스카 헤이시로(須賀平四郞)가 말을 달려 돌아와 아뢰었다. "적의 수는 갈대밭에 가려 분간되지 않습니다만, 2, 3천을 넘지는 않을 것입니다. 싸움은 아군이 이깁니다." 테루마사가 "까닭이 무엇이냐?" 하고 묻자 스카가 "적의 후진이 이어지지 않고, 뒤쪽 10정(町)쯤 안에 군사를 매복시킬 만한 땅이 있을 것 같지도 않습니다. 멀리서 달려온다면 사람과 말이 숨이 차서 손쉬운 먹잇감이 될 것입니다" 하고 말을 채 맺기도 전에, 이기 세이베에 타다츠구(伊木淸兵衞忠次)가 "아군의 깃발은 앞으로 기울고 진의 빛이 검게 짙습니다. 적은 깃발이 뒤로 젖혀지고 사람들 얼굴빛이 하얗습니다. 틀림없이 아군이 이깁니다" 하고 기세를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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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루마사가 "아군의 진을 가다듬어라. 함부로 나아가지 마라" 하고 명했으나, 어찌 머뭇거리겠는가. 저마다 뒤지지 않으려고 3정쯤 나아갔다. 테루마사가 "지금이야말로 때가 좋다" 하며 허리에 꽂은 사이(麾, 지휘채)를 뽑아 한 번 휘두르자, 모두 한꺼번에 와 하고 쳐들어가 순식간에 적을 쳐부수었다. 핫타 타로베에 히사츠구(八田太郞兵衞久次)가 달아나는 적을 뒤쫓다가, 붉은 갑옷을 입고 보라색 호로(母衣, 등에 메어 부풀리는 천 덮개)를 멘 무사 하나가 숨을 고르고 있는 것을 보고 말을 달려 다가갔다. 그 무사는 말을 타지 않고 서 있었는데, 곧바로 한쪽 무릎을 꿇고 앉았다. 핫타는 말에서 뛰어내려 창을 맞대고 끝내 그를 베었다. 그는 마에다 한자에몬(前田半左衞門)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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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에몬은 토쿠젠인(德善院, 마에다 겐이)의 조카(이본에는 사촌 동생)로, 기후 추나곤 히데노부(岐阜中納言秀信, 오다 히데노부)의 측근 무사였다. 겉보기에는 유난히 온화하고 늘 남과 다투는 말을 잘 참아 넘기는 사람이었으므로, 사람들은 "사내가 아니다" 하고 비웃었다. 그런데 이날 싸움에서 무너지는 군세 가운데 타케이치 츄자에몬(武市忠左衞門)과 둘이서 버티고 서서, 달아나려는 아군을 북돋우며 "따르라, 따르라" 하고 외쳐 눈이 휘둥그레질 만한 활약을 했고, 타케이치도 전사했다. 평소 마에다를 업신여기던 자들은 "오늘 마에다를 따를 만한 자는 하나도 없었다" 하고 말했다. 핫타의 아버지는 야소에몬 마사히사(彌三右衞門正久)라는 사무라이다이쇼(士大將, 한 부대를 이끄는 무사 대장)였다. 타로베에는 이해 열여덟 살로, 아버지의 진다이(陣代, 당주를 대신해 군을 이끄는 사람)였다. 마에다를 베자 시종 카시와바라 모쿠에몬(柏原杢右衞門)과 오제키 야고자에몬(尾關彌五左衞門)이 달려와 핫타를 말에 태워 돌아왔다. 핫타는 뒷날 사람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나는 젊었고 혈기가 약한 것도 아니었소. 적 하나를 베었다고 그리 지칠 일도 아니었는데, 그때 적을 도우러 오는 자가 있었다면 어린아이에게도 사로잡혔을 것이오. 삶과 죽음 사이에 서서 적을 베고 나니 도리어 용기가 꺾였기 때문일 것이오." 게이초 6년(1601) 녹 2천 석을 더 받았고, 같은 8년(1603) 테루마사가 참의(參議)에 임명되어 입궐할 때 히사츠구가 타치(太刀, 큰 칼)를 받드는 역을 맡았다. 종5위하에 서임되어 탄고노카미(丹後守)라 칭했고, 뒤에 붕고노카미(豐後守)로 고쳤다. 마에다 토시나가(前田利長)가 히사츠구의 무명(武名)을 듣고 1만 석으로 불렀으나 가지 않았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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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쿠시마 마사노리는 오테의 총대장으로, 본디 남에게 앞질리지 않으려 했다. 그런데 테루마사가 이미 신카노에서 적을 쳐부수었다는 말을 듣고 분해 몸부림치며 23일 아침 앞장서서 쳐들어갔다. 이케다 가문의 군병이 아사히구치(朝日口)로 쳐들어가는 것을 소가마에(惣構, 성 밖 마을까지 둘러싼 바깥 성곽)의 둑 위에서 보고는 남의 공명을 시기하여, 도젠(道全)이라는 법사 무사(法師武者, 머리를 깎은 무사)에게 명해 마을 어귀에 불을 지르게 했다. 카라메테의 군병은 연기에 숨이 막혀 나아가지 못했다. 테루마사가 이를 보고 "이것은 알 수 없는 짓이다. 불이 꺼지기를 기다려야 하겠는가" 하며 쿠와노키하타(桑木畑)를 돌아 나가라가와(長良川) 쪽에서 성 뒤쪽 미즈노테(水の手, 성에 물을 대는 곳)로 쳐들어갔다. 이케다 키치자에몬(池田吉左衞門)은 테루마사가 이 성에 있었을 때 수문을 맡고 있어서 길을 잘 알았다. 물 빠지는 구멍으로 들어가 수문을 부수고 깃발을 올리며 "이케다 산자에몬노조, 혼조(本城, 성의 중심 구역)에 가장 먼저 들어갔다!" 하고 외쳤다. 마사노리가 길을 막은 것이 도리어 이케다 가문에는 다행이었다고 뒷날 사람들이 말했다. 도쇼구(東照宮,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서한을 내려 "적군이 강을 사이에 두고 맞서는 것을 손쉽게 쳐부수고 기후를 함락시킨 공명은 칭찬할 말이 없을 정도다" 하고 썼다.
원문
번역: historyfoli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