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키가하라(關ヶ原) 싸움이 무너졌을 때, 시마즈 요시히로(島津義弘)는 군사를 둥글게 뭉쳐 후쿠시마 교부쇼유 마사타케(福島刑部少輔正武)의 진 앞을 뚫고 나가려고 곧장 밀고 나아갔다. 열여섯 살이던 마사타케가 맞서 달려들려 하자, 가지타 마타에몬(梶田又右衞門)이 "죽기로 날뛰는 적과는 싸우게 하지 않겠습니다" 하며 붙잡아 말렸다. 동군이 밀어닥치자 요시히로의 조카 나카츠카사노타이후 토요히사(中務大輔豐久)가 요시히로의 말 곁으로 다가와 무언가 속삭이는 듯하더니, 곧 대군에 맞서 달려들어 전사했다. 요시히로가 이제 끝이라며 되돌아 싸우려 하자, 아타 초주 뉴도 모리아츠(阿多長壽入道成淳)가 요시히로의 말 앞을 가로막고 "대장은 천 기가 한 기만 남더라도 죽지 않고 계책을 짜는 것을 도리로 삼습니다. 어서 뚫고 물러나십시오" 하고 말하며 말머리를 돌려 세웠다. 그러고는 "시마즈 효고노카미(島津兵庫頭)의 마지막 합전이다" 하고 외치며 힘껏 싸우다 전사했다. 모리아츠의 의기에 북돋워져 그 자리에 버티고 막아 싸우다 전사한 자가 많았다. 그 틈에 요시히로가 다시 군사를 모아 대열을 갖추고 물러날 때, 마츠다이라 타다요시(松平忠吉)와 이이 나오마사(井伊直政)가 "놓치지 마라" 하며 뒤쫓아 왔다. 요시히로의 병사들이 허리에 꽂고 있던 다네가시마(種ヶ島) 철포를 뽑아 들고 일제히 무릎을 꿇고 쏘아 대자, 타다요시와 나오마사가 모두 부상을 입었고, 그 뒤로 양쪽은 갈라섰다.
시마즈 요시히로의 세키가하라 퇴각과 오사카 상인의 의리
에도 시대 중기 오카야마번의 유학자 유아사 조잔(湯浅常山)이 센고쿠~에도 초 무장들의 일화를 모은 『조잔키단(常山紀談)』(1739년 자서)의 한국어 번역이다. 후대에 전해진 이야기를 모은 책이라 역사적 사실과 다른 대목이 있다.
일설에는 혼다 타다카츠(本多忠勝)가 뒤쫓았는데 철포에 말을 맞아 말에서 떨어지자, 가지 킨페이(梶金平)가 달려와 자기 말에 타다카츠를 태우는 사이에 시마즈 군이 멀어졌다고 한다. 또 가와카미 사쿄(河上左京)의 종자 가시와다 겐조(柏田源藏)가 쏜 철포에 나오마사가 맞았다고도 한다. 또 이런 이야기도 있다. 마츠다(松田) 아무개라는 모노가시라(物頭, 아시가루 부대의 대장)가 조선 출병 때 데려온 아이가 자란 자를 자기 조(組)에 두고 있었는데, "사슴뿔 다테모노(立物, 투구 장식)를 단 투구가 효부(兵部, 나오마사)다. 쏘아 쓰러뜨려라" 하고 명했다. 그 병사가 철포를 겨누자 나오마사는 나기나타(眉尖刀)를 옆으로 비껴들고 말을 몰아 달려들었다. 그 병사가 "마츠다 아무개" 하고 이름을 대며 쏘자 탄환이 나기나타에 맞았고, 그 탄환이 허리뼈를 스쳐 나오마사는 말에서 떨어졌다. 그 뒤 난리가 가라앉고 사츠마(薩摩, 시마즈 쪽)에서 나오마사를 대접했을 때, 나오마사는 마츠다를 불러내 술잔을 건네며 "세키가하라에서 이미 죽었어야 할 몸이 다행히 살아남아 오늘 이렇게 대면하게 되었다" 하고 말한 뒤, "나는 한쪽 다리를 앓게 되었다. 이런 무공을 세운 사람에게 적은 녹은 어울리지 않소. 오늘 대접해 주신 대신 이 사람의 녹을 늘려 주시오" 하고 말했다. 그 모노가시라는 훗날 "나오마사가 불러내어 대면했을 때만큼 난처했던 적은 평생 없었다" 하고 말했다.
원문
요시히로는 오미(近江)의 코가(甲賀)를 지나면서 노인 한 사람을 길잡이로 삼아 이가(伊賀)의 산길을 거쳐 우에노(上野)까지 다다랐다. 이곳은 츠츠이 이가노카미 사다츠구(筒井伊賀守定次)의 성이었다. 요시히로가 사자를 보내 "시마즈 요시히로가 지금 지나갑니다" 하고 알리고 길을 가는데, 노부시(野武士, 패잔병을 노리는 무장 무리) 사오백 명가량이 산속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요시히로는 대수롭지 않게 여겨 이들을 쳐부수고 두 사람을 사로잡아 우에노로 되돌아가 성 정문 울타리 기둥에 묶어 두었다. 그러고 나서 나라(奈良)로 나가, 길잡이 노인에게는 칼에 꽂아 두었던 샤쿠도(赤銅, 구리에 금을 섞은 합금) 코가이(笄, 칼집에 꽂아 두는 머리 손질 도구)를 주며 "이것을 증표로 삼아 반드시 사츠마로 오라. 이번 수고에 보답하겠다" 하고 말했다. 그러고는 오사카(大坂)에 이르러 배를 타고 가고시마(鹿兒島)로 돌아갔다.
원문
일설에 따르면 사츠마에 사콘노조(左近丞)라는 성이 있다. 이는 게이초(慶長) 무렵 오사카의 상인으로, 오랫동안 사츠마의 쌀을 거래하던 자의 집안이다. 세키가하라 싸움이 무너진 뒤 요시히로가 오사카에 이르렀을 때, 무사 한 사람이 먼저 그 상인의 집에 갔다. 상인은 몹시 기다렸다는 모습으로 "주군께서는 어찌 되셨습니까?" 하고 물었다. "아니오, 전사하셨소" 하고 대답하자 상인은 눈물을 흘리며 말했다. "여러 해 두터운 은혜를 입었기에 세키가하라가 무너졌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틀림없이 이리로 오시리라 헤아려 배를 마련해 기다리고 있었는데, 그 보람도 없게 되었으니 원통합니다. 하다못해 뒤따라 모시겠습니다." 그러고는 물에 뛰어들려 했다. 무사가 그를 붙잡고 "지금 같은 때에는 사람 마음을 헤아리기 어려워 그렇게 말했던 것이오. 실은 한쪽을 뚫고 이리로 오셨소" 하고 말하자, 상인은 "그렇게 의심받은 것은 원망스럽지만 그 이야기를 하다가는 때를 놓치겠습니다. 배에 오르실 채비부터 하십시오" 하고 말했다. 그 말이 끝나기도 전에 요시히로가 왔으므로 술통을 싣고 그 사이에 숨겨 태웠고, 상인 자신도 따라가 곧장 사츠마로 향했다. 그자의 아들 가운데 하나가 사츠마를 섬겼는데, 사콘노조는 그 자손이라고 한다.
원문
길잡이 노인은 사츠마에 가 보고 싶었지만 길이 멀어 그냥 지내고 있었다. 한참 뒤 남에게 이끌려 가고시마에 가서 코가이를 내보이자, "어찌 더 일찍 오지 않았느냐" 하며 갖가지로 대접하고 황금 500매를 주었다. 데려간 사람에게도 황금을 많이 주고, 사람을 딸려 돌려보냈다.
원문
번역: historyfoli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