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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마즈 요시히로의 세키가하라 퇴각과 오사카 상인의 의리

· 卷之十三 제27화 · 원문(일본어) 쪽

에도 시대 중기 오카야마번의 유학자 유아사 조잔(湯浅常山)이 센고쿠~에도 초 무장들의 일화를 모은 『조잔키단(常山紀談)』(1739년 자서)의 한국어 번역이다. 후대에 전해진 이야기를 모은 책이라 역사적 사실과 다른 대목이 있다.

세키가하라(關ヶ原) 싸움이 무너졌을 때, 시마즈 요시히로(島津義弘)는 군사를 둥글게 뭉쳐 후쿠시마 교부쇼유 마사타케(福島刑部少輔正武)의 진 앞을 뚫고 나가려고 곧장 밀고 나아갔다. 열여섯 살이던 마사타케가 맞서 달려들려 하자, 가지타 마타에몬(梶田又右衞門)이 "죽기로 날뛰는 적과는 싸우게 하지 않겠습니다" 하며 붙잡아 말렸다. 동군이 밀어닥치자 요시히로의 조카 나카츠카사노타이후 토요히사(中務大輔豐久)가 요시히로의 말 곁으로 다가와 무언가 속삭이는 듯하더니, 곧 대군에 맞서 달려들어 전사했다. 요시히로가 이제 끝이라며 되돌아 싸우려 하자, 아타 초주 뉴도 모리아츠(阿多長壽入道成淳)가 요시히로의 말 앞을 가로막고 "대장은 천 기가 한 기만 남더라도 죽지 않고 계책을 짜는 것을 도리로 삼습니다. 어서 뚫고 물러나십시오" 하고 말하며 말머리를 돌려 세웠다. 그러고는 "시마즈 효고노카미(島津兵庫頭)의 마지막 합전이다" 하고 외치며 힘껏 싸우다 전사했다. 모리아츠의 의기에 북돋워져 그 자리에 버티고 막아 싸우다 전사한 자가 많았다. 그 틈에 요시히로가 다시 군사를 모아 대열을 갖추고 물러날 때, 마츠다이라 타다요시(松平忠吉)와 이이 나오마사(井伊直政)가 "놓치지 마라" 하며 뒤쫓아 왔다. 요시히로의 병사들이 허리에 꽂고 있던 다네가시마(種ヶ島) 철포를 뽑아 들고 일제히 무릎을 꿇고 쏘아 대자, 타다요시와 나오마사가 모두 부상을 입었고, 그 뒤로 양쪽은 갈라섰다.

원문
關ヶ原の軍敗れし時、島津義弘眞丸に成りて、福島刑部少輔正武の陣の前を切拔けんと一文字に押通る。正武十六才、駈合せんとする處を、梶田又右衞門、死狂する敵に軍はせぬよ、とて追留めたり。東國勢押駈けしかば、義弘の從子中務大輔豐久、義弘の馬の側に乘寄せて囁く體なりしが、軈て大敵に駈合せ討死す。義弘今は是迄なりとて取て返されけるに、阿多長壽入道成淳、義弘の馬の前に打塞がり、大將は千騎が一騎に成候ても猶死せずして、謀をめぐらし候を道とこそすれ。疾く打破りて引退き給へ、といふ儘に馬の首を引直し、島津兵庫頭最後の合戰をするぞ、と呼はりて、散々に戰ひて討死しけり。成淳が義に勵まされ、踏止り支へ戰ひ討死する者多かりける。其暇に義弘又士卒を集め、列を整へ引退く時、松平忠吉、井伊直政剩すな、とて追駈けたり。義弘が兵ども種ヶ島の鐵炮を腰に挿したるを拔出し、ひた〱と折敷きて打懸けたるに、忠吉、直政共に手負ひて、夫より物別したりけり。

원문(일본어) 쪽 e330.p01

일설에는 혼다 타다카츠(本多忠勝)가 뒤쫓았는데 철포에 말을 맞아 말에서 떨어지자, 가지 킨페이(梶金平)가 달려와 자기 말에 타다카츠를 태우는 사이에 시마즈 군이 멀어졌다고 한다. 또 가와카미 사쿄(河上左京)의 종자 가시와다 겐조(柏田源藏)가 쏜 철포에 나오마사가 맞았다고도 한다. 또 이런 이야기도 있다. 마츠다(松田) 아무개라는 모노가시라(物頭, 아시가루 부대의 대장)가 조선 출병 때 데려온 아이가 자란 자를 자기 조(組)에 두고 있었는데, "사슴뿔 다테모노(立物, 투구 장식)를 단 투구가 효부(兵部, 나오마사)다. 쏘아 쓰러뜨려라" 하고 명했다. 그 병사가 철포를 겨누자 나오마사는 나기나타(眉尖刀)를 옆으로 비껴들고 말을 몰아 달려들었다. 그 병사가 "마츠다 아무개" 하고 이름을 대며 쏘자 탄환이 나기나타에 맞았고, 그 탄환이 허리뼈를 스쳐 나오마사는 말에서 떨어졌다. 그 뒤 난리가 가라앉고 사츠마(薩摩, 시마즈 쪽)에서 나오마사를 대접했을 때, 나오마사는 마츠다를 불러내 술잔을 건네며 "세키가하라에서 이미 죽었어야 할 몸이 다행히 살아남아 오늘 이렇게 대면하게 되었다" 하고 말한 뒤, "나는 한쪽 다리를 앓게 되었다. 이런 무공을 세운 사람에게 적은 녹은 어울리지 않소. 오늘 대접해 주신 대신 이 사람의 녹을 늘려 주시오" 하고 말했다. 그 모노가시라는 훗날 "나오마사가 불러내어 대면했을 때만큼 난처했던 적은 평생 없었다" 하고 말했다.

원문
一說に、本多忠勝追駈けたるが、馬を鐵炮にて搏たせ、馬より落つれば梶金平馳來りて、己が馬に忠勝を乘せし其間に、島津が軍隔たるといへり。又河上左京が從者柏田源藏が搏ちける鐵炮に、直政中るともいへり。又松田某といふ朝鮮陣の時連て歸りし小兒の成長したるを組にして有りけるが、鹿の角の立物の冑こそ兵部よ。打留めよ、と下知しければ、鐵炮を差向けたるに、直政眉尖刀を橫たへて馬を乘り懸けられしに、彼兵松田某と名乘りて打ちしに眉尖刀に中り、其玉腰骨にかすりて馬より落ちられけり。さて亂鎭りて後薩摩の許に直政を饗せられしに、直政松田を呼出し盃を指し、關ヶ原にて旣に死すべかりし身の幸に存命へて、今日對面する事を得たり、といひて後、我片足をなやみぬ。斯る武功の人に少祿こそ不足に候へ。今日の遇饗に祿を增給はり候へ、と言はれけり。彼の物頭後に、直政の呼出されて對面に及びし時の迷惑なる、一生に覺えず、といひけり。

원문(일본어) 쪽 e330.p02

요시히로는 오미(近江)의 코가(甲賀)를 지나면서 노인 한 사람을 길잡이로 삼아 이가(伊賀)의 산길을 거쳐 우에노(上野)까지 다다랐다. 이곳은 츠츠이 이가노카미 사다츠구(筒井伊賀守定次)의 성이었다. 요시히로가 사자를 보내 "시마즈 요시히로가 지금 지나갑니다" 하고 알리고 길을 가는데, 노부시(野武士, 패잔병을 노리는 무장 무리) 사오백 명가량이 산속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요시히로는 대수롭지 않게 여겨 이들을 쳐부수고 두 사람을 사로잡아 우에노로 되돌아가 성 정문 울타리 기둥에 묶어 두었다. 그러고 나서 나라(奈良)로 나가, 길잡이 노인에게는 칼에 꽂아 두었던 샤쿠도(赤銅, 구리에 금을 섞은 합금) 코가이(笄, 칼집에 꽂아 두는 머리 손질 도구)를 주며 "이것을 증표로 삼아 반드시 사츠마로 오라. 이번 수고에 보답하겠다" 하고 말했다. 그러고는 오사카(大坂)에 이르러 배를 타고 가고시마(鹿兒島)로 돌아갔다.

원문
義弘、近江の甲賀にかゝり、老翁一人案內者にして道しるべさせ、伊賀の山路を經て上野まで行き著かれたり。爰は筒井伊賀守定次の城なり。使を以て、島津義弘唯今打過ぎ候、と云ひ送りて行く處に、野武士四五百人が程山の中に待ちかけたり。義弘物の數ともせず打破り、二人生捕りて上野に立歸り、大手の柵の木に搦め附け、偖て夫より奈良に出で、彼の老翁には刀に差添へられし赤銅の笄を與へ、此を證に必ず薩摩に來れ。今度の勞に報ぜん、とて大坂に至り船に乘り、鹿兒島に歸られけり。

원문(일본어) 쪽 e330.p03

일설에 따르면 사츠마에 사콘노조(左近丞)라는 성이 있다. 이는 게이초(慶長) 무렵 오사카의 상인으로, 오랫동안 사츠마의 쌀을 거래하던 자의 집안이다. 세키가하라 싸움이 무너진 뒤 요시히로가 오사카에 이르렀을 때, 무사 한 사람이 먼저 그 상인의 집에 갔다. 상인은 몹시 기다렸다는 모습으로 "주군께서는 어찌 되셨습니까?" 하고 물었다. "아니오, 전사하셨소" 하고 대답하자 상인은 눈물을 흘리며 말했다. "여러 해 두터운 은혜를 입었기에 세키가하라가 무너졌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틀림없이 이리로 오시리라 헤아려 배를 마련해 기다리고 있었는데, 그 보람도 없게 되었으니 원통합니다. 하다못해 뒤따라 모시겠습니다." 그러고는 물에 뛰어들려 했다. 무사가 그를 붙잡고 "지금 같은 때에는 사람 마음을 헤아리기 어려워 그렇게 말했던 것이오. 실은 한쪽을 뚫고 이리로 오셨소" 하고 말하자, 상인은 "그렇게 의심받은 것은 원망스럽지만 그 이야기를 하다가는 때를 놓치겠습니다. 배에 오르실 채비부터 하십시오" 하고 말했다. 그 말이 끝나기도 전에 요시히로가 왔으므로 술통을 싣고 그 사이에 숨겨 태웠고, 상인 자신도 따라가 곧장 사츠마로 향했다. 그자의 아들 가운데 하나가 사츠마를 섬겼는데, 사콘노조는 그 자손이라고 한다.

원문
一說に、左近丞と云ふ姓薩摩に有り。是は慶長の頃大坂の商にて、年久しく薩摩の米を商ひける者なり。關ヶ原破れて後、義弘大坂に著かれしに、士一人先達つて彼の商家に行きしかば、彼商待ち侘びたる體にて、君は如何に御座まし候、と問ふ。いやとよ。討死有りしよ、と答へければ、商家淚を流し、年比厚恩を蒙りし事なれば、關ヶ原破れぬと聞くより、必ず爰に渡らせられんと相計りて、船を設けて待ち居たる甲斐も無く、口惜き事なり。せめて御供に參らんとて水中に飛入らんとせしを押留め、今の時なれば人心の計り難くて斯くは言ひしなり。實は一方打破りて爰に御座せしなり、と言へば、斯疑はれしは恨なれども、夫を云はんには時移るべしとて、船に乘らせられん樣をこそ、と言ひも終らぬに、義弘來られしかば、酒樽を積み其間に隱し乘せ、其身も附添ひて直に薩摩に赴きし。其者の子の中、一人薩摩に仕へし其子孫なりといへり。

원문(일본어) 쪽 e330.p04

길잡이 노인은 사츠마에 가 보고 싶었지만 길이 멀어 그냥 지내고 있었다. 한참 뒤 남에게 이끌려 가고시마에 가서 코가이를 내보이자, "어찌 더 일찍 오지 않았느냐" 하며 갖가지로 대접하고 황금 500매를 주었다. 데려간 사람에게도 황금을 많이 주고, 사람을 딸려 돌려보냈다.

원문
彼老翁薩摩に行かばやと思へども、道遠ければ空しく過ぎしに、程經て人に誘はれ、鹿兒島に行きて笄を出しければ、など疾く來らざりしぞ、とて種々饗し、黃金五百枚與へ、誘ひし人にも黃金數多與へて、人を添へて送り歸されけり。

원문(일본어) 쪽 e330.p05

번역: historyfoli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