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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고 우토 성을 칠 때 스기모토 지로스케가 야습한 일

· 卷之十五 제13화 · 원문(일본어) 쪽

에도 시대 중기 오카야마번의 유학자 유아사 조잔(湯浅常山)이 센고쿠~에도 초 무장들의 일화를 모은 『조잔키단(常山紀談)』(1739년 자서)의 한국어 번역이다. 후대에 전해진 이야기를 모은 책이라 역사적 사실과 다른 대목이 있다.

기요마사(淸正)가 우토(宇土)를 에워쌌을 때, 어느 밤 "적이 야습할 것이다. 방심하지 마라" 하고 명했다. 과연 적은 스기모토 지로스케(杉本次郞介)를 대장으로 삼아 기요마사의 진에 야습해 왔다. 쿠사카베 헤이스케(日下部平介, 이본에는 兵介)와 사카가와 츄베에(坂川忠兵衞)가 창을 맞대고 맹렬히 싸웠다. 스기모토는 수비가 굳은 것을 보고 성 안으로 물러갔다. 다나카 효스케(田中兵助)는 술에 취해 누워 있다가 철포 소리에 놀라 일어나 창을 들고 달려 나갔는데, 적은 물러나 모두 문 안으로 들어가고 스기모토 혼자 오테(大手, 성의 정면) 목책의 키도구치(木戶口, 목책 출입구)에 남아 있었다. 다나카가 소리쳐 부르자 스기모토는 십자창(十文字の鎗)으로 다나카를 한 번 찌르고 목책 안으로 들어갔다. 기요마사가 불을 밝히고 싸운 자들을 불러들이자 다나카가 "오늘 밤 제가 앞장서 쳐들어갔습니다" 하고 아뢰었다. 기요마사는 잘 살펴보고 말했다. "맨 먼저 싸운 자(一番)는 쿠사카베와 사카가와 두 사람 중 하나다. 두 사람 모두 화살 상처가 있다. 활은 창을 맞댈 무렵에 쏘는 것이고, 한꺼번에 덤벼들면 쏘기 어려운 법이다. 다나카의 상처는 오른팔에 있다. 창에 입은 상처라면 왼손에 있어야 한다. 더구나 상처가 옆으로 나 있는 것은 네가 스스로 벤 것이 아니냐?" 그러자 다나카는 "적은 은빛 오모다카(澤瀉, 택사 잎 모양) 다테모노(立物, 투구에 세우는 장식)를 붙인 투구를 쓰고 십자창을 들었으며 스기모토 지로스케라고 이름을 댔습니다. 그래도 거짓이라 여기신다면 더없이 불운한 일입니다" 하고 물러났다. 나중에 성을 내주고 스기모토도 기요마사를 섬기게 되었으므로 이 야습 일을 물으니, 스기모토는 "성에 들어가려 할 때 즈나리(頭盛)[역주: 독음 「즈나리」는 근거 없음.] 투구를 쓰고 창을 든 채 달려온 무사를 한 번 찔렀습니다" 하고 아뢰었다. 기요마사는 다나카의 말이 증거와 맞아떨어졌으므로 5백 석의 녹을 내렸다. 다나카는 그날 밤 글 한 통을 남기고 "헛된 이름을 입어 세상의 비방을 받았으니 더해 주신 녹에 본래의 녹까지 얹어 돌려드립니다" 하며 히고(肥後)를 떠났다. 다나카는 본래 도적이었다. 히데요시(秀吉) 때 이시카와 고에몬(石川五右衞門)이라는 강도 두목을 교토의 산조가와라(三條河原)에서 처형하니, 길마다 구경하는 남녀가 무리를 이루었다. 다나카는 그 틈에 섞여 있다가 이시카와를 끌고 지나갈 때 휙 달려들어 이시카와의 오랏줄을 잡은 자(繩取)를 단칼에 베어 넘기고 "고에몬 님, 평소의 은혜에 보답합니다" 하고 외치고는, 소란스레 북적이는 사이에 사람들 속으로 달려 들어가 끝내 달아난 사내였다. 이때 스물여섯 살이었다던가.

원문
淸正宇土を圍む時、或夜、敵夜討すべし。な怠そ、と下知せられけり。果して杉本次郞介を大將として淸正の陣に夜討す。日下部平イ兵介、坂川忠兵衞鎗を合せ散々に攻め戰ふ。杉本守固きを見て城中に引返す。田中兵助は酒に醉ひて臥居たりしが、鐵炮の音に驚き起上り、鎗を取りて駈け出でしに、敵引取り皆門內に入りて、杉本一人大手の柵の木戶口に殘り止りたり。田中詞をかけたれば、杉本十文字の鎗にて田中を一鎗突きて、柵の中に入りにけり。淸正火を燈し軍せし者共を呼ばれしに、田中、今夜先駈したり、と申す。淸正能く見て、一番は日下部、坂川二人の內なり。二人とも箭創有り。弓は鎗を合する時射て、一同に懸れば射難きものなり。田中が創は右の腕に有り。鎗創ならば左の手に有るべし。殊に橫に疵の有るは汝が自ら切つたるにや、と云はれしかば、田中、敵は銀の澤瀉の立物打つたる冑を著、十文字の鎗にて杉本次郞介と名乘りたりき。猶僞と思召し候はんには不幸の至に候、とて退きけり。後城明渡し、杉本も淸正に奉公しければ、此夜討の事を問はれしに、杉本、城に入らんとせし時、頭盛の冑を著鎗を提げて走り來り候武者を、一鎗突いて候、と申す。淸正、田中が詞證據に符合しければ、五百石の祿を與へらる。田中其夜一通の書を殘し、虛名を蒙り世の誹に合ひ候程に、加祿に本の祿を添へて返し候、とて肥後を立退きけり。田中は其初盜賊にて有りしが、石川五右衞門と言へる强盜の長を、秀吉の時京の三條河原にて刑罪せられしに、道々見物の男女群をなす。田中其中に紛れて、石川を引きて過ぐる時につと飛懸り、石川が繩取を唯一刀に斬倒し、五右衞門殿日比の恩に報じ候、と呼はり、騷ぎ犇めく間に、人の中に走り入り、終に逃げ出でける男なり。此時二十六歲とかや。

원문(일본어) 쪽 e355.p01

번역: historyfoli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