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에다 케이지 토시오키(前田慶次利大)는 코츠코츠사이(忽々齋)라 호를 썼다. 가가(加賀)의 토시나가(利長)와는 사촌 사이다.
마에다 케이지의 일
에도 시대 중기 오카야마번의 유학자 유아사 조잔(湯浅常山)이 센고쿠~에도 초 무장들의 일화를 모은 『조잔키단(常山紀談)』(1739년 자서)의 한국어 번역이다. 후대에 전해진 이야기를 모은 책이라 역사적 사실과 다른 대목이 있다.
다른 설에는, 토시오키는 다키가와 기다유(瀧川儀大夫)의 아내가 아이를 밴 채 이혼하고 도시이에(利家)의 형 구란도(藏人)에게 다시 시집가서 마에다 집안에서 태어났다고 한다.
마에다 가문을 떠나,
토시오키는 학문을 좋아하고 여러 재주에도 능했다. 익살스럽게 세상을 희롱하고 사람을 가볍게 여겼으므로 도시이에에게 꾸지람을 들은 일이 여러 번이었다. 토시오키는 한숨을 크게 쉬며 "설령 만호후(萬戶侯)라 해도 마음대로 할 수 없는 일이 있다면 필부와 다를 바 없다. 떠나 버리자" 하고 혼잣말을 했다. 어느 날 그는 도시이에에게 차를 대접하겠다고 했고, 도시이에는 기뻐하며 케이지의 집으로 왔다. 케이지는 목욕통(水風呂)에 찬물을 가득 채워 숨겨 두고, 요코야마 야마시로노카미 나가치카(橫山山城守長知, 다른 본에는 長家)를 시켜 "더운 목욕물이 준비되어 있습니다. 들어가시겠습니까" 하고 말하게 했다. 도시이에는 "좋지" 하며 목욕하는 곳으로 갔다. 케이지가 몸소 물 온도를 보고 "알맞습니다" 하고 말하자, 도시이에는 아무 의심 없이 목욕통으로 갔는데 거기에는 찬물이 가득했다. 도시이에가 "바보 녀석에게 속았구나. 끌고 오너라" 하고 말했지만, 케이지는 마츠카제(松風)라는 뛰어난 말을 뒷문에 끌어다 세워 두었다가 그 말에 올라 달아났다고 한다.
또 교토에서 여름 무렵 말을 강에 씻기러 보냈는데, 마부의 허리에 에보시(烏帽子)를 달게 했다. 길에서 오가던 사람들이 걸음을 멈추고, 크고 튼튼한 말이라 "누구의 말이오" 하고 물었다. 그러면 마부는 곧 에보시를 쓰고 발로 박자를 밟으며 "이 가게(鹿毛)로 말할 것 같으면, 붉은 촛카이(ちよつかい)에 가죽 하카마, 가시덤불에 숨은 싸움닭의 볏 같은 다테에보시(立烏帽子), 마에다 케이지의 말이올시다" 하고 고와카마이(幸若舞) 가락으로 읊으며 끌고 지나갔다. 보는 사람이 물을 때마다 이렇게 했다고 한다.[역주: 가게는 몸이 밤색이고 갈기·꼬리·다리가 검은 털빛의 말, 촛카이는 소매 없는 겉옷이다. 고와카마이에서 무사가 차림새를 늘어놓으며 이름을 대는 장면을 흉내 낸 것이다.]
원문
우에스기 카게카츠(上杉景勝)를 섬겼다.
처음 알현할 때 흙 묻은 무 세 뿌리를 받침에 얹어 내놓았다.
케이지가 붉은 자루 창을 들게 하자 "어째서냐" 하고 나무랐는데, 케이지는 "조상 대대로 들어 온 것입니다" 하고 말했다. 미즈노 토베에(水野藤兵衞), 니라즈카 리에몬(韮塚理右衞門), 우사미 야고에몬(宇佐美彌五右衞門), 후지타 모리에몬(藤田森右衞門)은 오랫동안 붉은 자루 창을 들게 해 달라고 청했으나 허락받지 못했다. 그래서 "케이지를 막지 않으신다면 우리 넷도 함께 허락해 주십시오" 하고 호소해 허락을 받았다.
나오에(直江)가 야마가타(山形)로 쳐들어갔다가 물러날 때, 모가미 요시아키(最上義光)가 대군으로 뒤쫓아 와 스가와(洲川)에서 싸움이 벌어졌다. 요시아키가 하타모토(旗本, 대장 직속 군사)를 이끌고 쳐들어와 몇 시간 동안 싸웠는데, 우에스기 군이 물러나지 못하자 나오에가 화를 내며 "내가 대장으로 이쪽을 맡고서 이렇게 밀리다니 분하다" 하며 몸부림쳤다. 그러자 케이지가 말 앞을 가로막고 서서 "여기는 저에게 맡겨 주십시오" 하고 말을 던지고는, 적과 아군이 서로 노려보고 있는 곳으로 말을 몰고 나갔다. 스기하라 히타치(杉原常陸)는 선봉에서 다네가시마(種ヶ島) 철포를 지휘하고 있었는데, 케이지에게 "말에서 내려 덤벼드십시오" 하고 말하자 케이지는 말에서 뛰어내렸다. 그날 케이지의 차림은 검은 갑옷에 쇼조히(猩々緋, 선명한 진홍빛 모직) 하오리를 입고, 금빛의 모난 알 이라타카(いら高) 염주 술에 금 표주박을 단 것을 목에 걸고, 야마부시(山伏, 산에서 수행하는 승려)의 두건을 쓰고 십자창을 들었으며, 검은 말에는 금빛 야마부시 두건을 씌우고 가라쿠와(唐鍬)를 달았다. "마에다 케이지" 하고 이름을 외치며 덤벼들자 미즈노, 니라즈카, 우사미, 후지타 넷도 똑같이 창을 꼬나들고 고함을 지르며 거침없이 적을 찔러 물리쳤다. 스기하라가 다네가시마 철포 2백 자루를 조금 높은 곳으로 밀어 올려 쏘게 하니 양쪽이 갈라섰고, 케이지는 명령을 내려 물러났다.
원문
케이지는 누인 비단(練) 사시모노(指物, 등에 꽂는 깃발)에 "다이후헨모노(大ふへん者)"라고 써넣었다. 사람들이 "너무 지나치지 않소" 하자 케이지는 "너희는 '부헨(武邊)'으로 읽었느냐. 나는 몰락해서 가난하니 '다이후벤모노(大不辨者)', 곧 몹시 궁색한 자라는 뜻이다" 하고 농담했다고 한다.[역주: 「ふへん」은 「大武辺者(대단한 무용의 사나이)」로도, 「大不辨者(몹시 궁색한 자)」로도 읽힌다. 사람들은 첫째 뜻으로 읽고 자만이 지나치다고 했고, 케이지는 둘째 뜻이라고 받아넘겼다.]
우에스기 가문의 녹지가 깎인 뒤 많은 무사가 하직하고 떠났는데, 케이지를 7, 8천 석이나 1만 석으로 부르려는 다이묘가 있었다. 케이지는 "나는 이번 난리에서 여러 다이묘의 겉 다르고 속 다른 마음을 보고 정이 떨어졌다. 카게카츠가 아니고서는 내가 주군으로 삼을 사람이 없다. 녹을 주며 곁에 두어 주십시오" 하고, 5백 석의 녹으로 시골에 물러나 살았다. 풍월을 즐기고 와카(和歌)의 학문에 마음을 두며, 『겐지 이야기(源氏物語)』를 강론하다가 생을 마쳤다.
원문
번역: historyfoli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