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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이 나오타카가 진다이를 맡은 일

· 卷之二十 제17화 · 원문(일본어) 쪽

에도 시대 중기 오카야마번의 유학자 유아사 조잔(湯浅常山)이 센고쿠~에도 초 무장들의 일화를 모은 『조잔키단(常山紀談)』(1739년 자서)의 한국어 번역이다. 후대에 전해진 이야기를 모은 책이라 역사적 사실과 다른 대목이 있다.

오사카(大坂)의 일이 일어났을 때, 이이 카몬노카미 나오타카(井伊掃部頭直孝)를 불러 형 우콘노타이후 나오카츠(右近大夫直勝)의 진다이(陣代, 당주를 대신해 군을 이끄는 사람)를 맡으라는 명이 내려졌다.

원문
大坂の事起りし時井伊掃部頭直孝を召して、兄右近大夫直勝の陣代をぞ仰せ出されける。

원문(일본어) 쪽 e437.p01

나오타카는 나오마사(直政)의 둘째 아들로, 어머니는 마츠다이라 스오노카미 야스치카(松平周防守康親)의 종자의 딸이었다. 나오타카가 여섯 살 때 어머니 쪽에서 나오마사에게 보냈는데, 나오마사는 그를 농민의 집에 맡겨 두었다. 열세 살 때 민가에 도둑이 들어 소란이 나자 나오타카는 이를 듣고 뛰쳐나갔다. 캄캄한 밤인데도 산으로 달아나는 도둑을 뒤쫓아 넓적다리를 베어 쓰러뜨렸다. 이윽고 사람들이 많이 몰려와 도둑을 때려죽였다. 이 일을 나오마사에게 아뢰자, 나오마사는 나오타카를 불러들였다. 겨울이었는데 북쪽으로 난 방의 눈이 들이치는 자리에 무릎 꿇려 두었다. 눈이 무릎을 덮도록 쌓였지만 나오타카는 조금도 움직이지 않았다. 나오마사는 기뻐하며 그를 안으로 불러들이고 강아지를 주었다. 열네 살 때 나오마사가 병이 깊어 죽음에 이르렀을 때, 나오타카의 앞날이 뚜렷이 보였던 것일까, 지휘채(麾)에 투구를 곁들여 유품으로 주었다. 나오타카는 조슈(上州)에서 1만 석을 받고 오반가시라(大番頭, 쇼군 직속 경호대 오반의 대장)에 임명되었다. 나오마사의 맏아들이 아버지의 뒤를 이었으나, 병이 잦아 공무를 감당하기 어려웠다고 한다.

원문
直孝は直政の二男にて、母は松平周防守康親の從者の女なり。直孝六つに成りし時、母の方より直政に送りけるを百姓の許に置かれけるが、十三の時民家に盜の入りて騷ぐを聞き駈出て、暗夜の事なるに、盜山へ登りけるを追懸けて、高股を切つて落されけり。斯くて人數多來りて盜をば打殺しぬ。直政に申せば呼び寄せて、冬の事なるに、北に向きたる座敷の雪の入る處に跪かせて置かれけり。雪膝を降埋めどもちつとも動かず。直政悅んで呼び人れられ、犬の子を與へられけり。十四の時直政病重くて死に及ぶ時、その生先やしるかりけん、麾に甲を添へて形見に與へらる。直孝は上州にて一萬石を賜はり、大番頭を命ぜらる。直政の長子父の跡を嗣ぐと雖も、多病にて公事勤勞し難しといへり。

원문(일본어) 쪽 e437.p02

나오타카는 곧바로 명을 받들지 않고 먼저 숙소로 돌아가 히코네(彥根)의 중신들을 모아 말했다. "명은 이러하오. 다만 여러분이 내 지휘를 따르겠다면 진다이를 맡겠소. 그렇지 않다면 명을 굳이 사양하겠소." 모두가 "어찌 지휘를 거스르겠습니까" 하고 대답하는 것을 듣고 나서야 "명대로 진다이를 맡겠습니다" 하고 아뢰었다. 이이 가문에 효고(兵庫)라는 나이 든 노련한 자가 있었는데, 나오타카가 그를 불러 "너는 평소 군술에 뛰어나다고 들었다. 전해 줄 만한 것이 있느냐?" 하고 물었다. 효고는 "늙어서 오늘 내일을 모르는 몸이라 전장에 나서지 못하는 것이 한스럽습니다" 하며 품에서 두루마리 한 권을 꺼내 "대장 된 사람은 뜻을 결단하여 망설임 없이 지휘하셔야 하지 않겠습니까?" 하고 물었다. 나오타카가 듣고 "가르침대로 하겠다. 내가 생각하는 바에 다른 갈래 없이 결단하겠다" 하고 대답하자, 효고는 "제가 여러 해 궁리한 것은 오직 이것뿐입니다. 양다리를 걸쳐서는 병법이 행해질 수 없습니다. 이 밖에 드릴 말씀은 없습니다" 하며 그 두루마리를 불태웠다고 한다.

원문
直孝暫く仰に任せず、先宿所に歸り、彥根の長臣を集め、仰せは云々なれども、各我下知に從ふべくば陣代を勤むべし。然らずば仰を固辭し申すべし、といへば、皆、爭でか下知に背くべき、と言ふを聞きて後、仰に任せて陣代仕り候べし、とぞ申されける。井伊の家に兵庫と言へる物師の年老たる有りしを、直孝呼出し、汝日比軍術に長ぜりと聞く。相傳ふべき事や有る、と問はるゝに、兵庫、年老候て今日を知らざる體、戰場に打出でざる事遺恨に候、とて懷より一卷の書を取出し、大將たる人志を決斷して、狐疑無く下知有るべきか、と問ふ。直孝聞きて、敎はいかにも、我思ふ處に他岐なく決斷すべし、と答へられければ、兵庫、臣が年比思慮せし處只是のみにて候。兩端を持して兵の道行はる可からず。外に申すべき言なし、とて其書を焚きけるとぞ。

원문(일본어) 쪽 e437.p03

겐나(元和) 원년(1615) 봄, 나오마사의 영지를 나오타카가 이으라는 명이 내려졌다. 나오타카는 안도 타테와키(安藤帶刀)를 통해 거듭 사양했으나 허락받지 못했다. 18만 석을 나누어 나오카츠에게 3만 석, 나오타카에게 15만 석을 주었다. 그 뒤 5만 석이 더해졌고, 다이토쿠인도노(台德院殿, 도쿠가와 히데타다)와 다이유인도노(大猷院殿, 도쿠가와 이에미츠)가 각각 5만 석씩 늘려 주었으며, 주조(中將, 근위부 차관)에 임명되었다.

원문
元和元年の春、直政の領國直孝相嗣がるべき旨仰せ出さる。安藤帶刀をもて再三辭し申せども許されず。十八萬石を分ちて、直勝に三萬石、直孝に十五萬石賜はりぬ。其後五萬石增與へられ、台德院殿、大猷院殿五萬石宛增賜り、中將に任ぜられけり。

원문(일본어) 쪽 e437.p04

번역: historyfoli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