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무라(木村)의 부대가 패한 가운데, 아오키 시치자에몬(靑木七左衞門)은 검은 호로(母衣, 등에 메어 부풀리는 천 덮개)를, 나가야 헤이다유(長屋平大夫)는 흰 호로를 메고 나오타카(直孝)의 군사들 속에 섞여 들었다. 그러나 이이 가문의 붉은 갑옷과 달랐으므로 사로잡혀 도쇼구(東照宮, 도쿠가와 이에야스) 앞으로 끌려왔다. 나가야는 "이마후쿠(今福)에서 일번창(一番鎗, 적과 가장 먼저 창을 맞댄 공)을 세웠소", 아오키는 "오늘 니시고오리(西郡)에서 첫 수급을 거두었소" 하고 이름을 밝혔다. 그 모습이 참으로 굳센 무사로 보였으므로 두 사람 모두 목숨을 건졌고, 미노(美濃)에서 각각 500석의 녹을 받았다.
아오키와 나가야가 사로잡힌 일과 이이 가문 붉은 갑옷의 유래
에도 시대 중기 오카야마번의 유학자 유아사 조잔(湯浅常山)이 센고쿠~에도 초 무장들의 일화를 모은 『조잔키단(常山紀談)』(1739년 자서)의 한국어 번역이다. 후대에 전해진 이야기를 모은 책이라 역사적 사실과 다른 대목이 있다.
木村が一陣敗北しける中に、靑木七左衞門黑母衣かけ、長屋平大夫は白母衣かけて、直孝の兵の中に紛入りしに、井伊家の赤色の物具に違ひたれば搦め取り、東照宮の御前に引參る。長屋は今福にて一番鎗を合せ、靑木は今日西郡にて一番首を取りたり、と名乘り申す。其體天晴剛の者よと見えしかば、二人共救けられ、美濃にて各五百石の祿賜はりけり。
이이 가문의 붉은 갑옷은 나오마사(直政) 때부터 시작되었다. 카이(甲斐) 다케다 가문의 사무라이다이쇼(士大將, 한 부대를 이끄는 무사 대장) 야마가타 사부로베에 마사카게(山縣三郞兵衞昌景)의 부대 군사들이 모두 한 빛깔로 붉었는데, 도쇼구가 이를 보고 마음에 들어 나오마사에게 명하여 갑옷과 투구를 비롯해 깃발·사시모노(指物, 등에 꽂는 깃발)·안장·등자·채찍에 이르기까지 모두 붉은빛 한 가지로 맞추게 했다. 그 뒤로도 이렇게 해 왔기 때문에, 이이 가문에 새로 들어와 봉공하는 무사가 있으면 부구부교(武具奉行, 무구를 관리하는 직)가 군령을 보여 주고 무구를 모두 새로 붉게 만들게 했다. 녹 100석당 20냥어치를 구소쿠비츠(具足櫃, 갑옷 상자)에 넣어 두면 부교(奉行, 담당 관리) 쪽 무사가 받아 성 안 창고에 넣어 두고, 그 값은 녹에서 갚게 했다. 그래서 이이 가문은 무비가 모자라는 일이 없었다. 혹시 가문을 떠나 다른 지방으로 가는 무사가 있으면 부교 쪽 무사가 무구를 돌려주었다고 한다. 이이 가문의 군령이라 하여 붉은 무구에 관한 일을 적은 책도 지금 세상에 전해진다.
원문
井伊家の赤き物具は、直政の時より始れり。甲斐の武田家の士大將山縣三郞兵衞昌景が一陣の軍兵、皆一色に赤かりしを、東照宮御覽じて好ませ給ひ、直政に仰せられて、甲冑を始め旗指物鞍鐙鞭にいたるまで、皆一色に赤色なり。夫より後も斯くの如くなりし故、井伊の家に新に奉公する士有れば、武具奉行軍令を見せて、物具皆新に赤色にして、百石に二十兩具足櫃に納め、奉行の士受取りて城中の庫に入置き、其價は祿の內より返しけり。此故に井伊家の武備缺くる事なし。若去つて他國に行く士有れば、奉行の士武具を返し與へけるとなり。井伊家の軍令とて、赤色の武具の事錄せる書も、今世に傳りけり。
번역: historyfoli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