덴쇼(天正) 15년(1587) 4월 1일, 히데요시(秀吉) 공은 치쿠젠(筑前)의 이와데(岩出) 성(구마가이 빗추노카미熊谷備中守가 지키던 성)을 하루 만에 쳐서 떨어뜨리라고 명했다. 선봉은 가모 우지사토(蒲生氏鄕)와 마에다 도시이에(前田利家)였고, 2진은 하시바 미카와 쇼쇼 히데야스(羽柴三河少將秀康), 삿사 무츠노카미(佐々陸奧守), 미즈노 타다시게(水野忠重)였다. 히데야스가 산을 반쯤 올랐을 때 도시이에와 우지사토 쪽에서 "성이 떨어졌으니 올라오실 것 없습니다" 하고 알려 왔다. 히데야스는 그때 열네 살이었다. 싸움에 나서 보지도 못했다며 분하게 여겨 눈물을 흘리자, 삿사 나리마사(佐々成政)가 깊이 감동해 칭찬했다. "과연 이에야스(家康) 님의 아드님이십니다. 오늘 싸움에 나서지 못했다고 안달하시며 눈물을 흘리셨습니다. 제게도 이런저런 말씀을 하셨는데, 이에야스 님을 닮으셨습니다." 그러자 히데요시 공이 말했다. "그렇지 않다. 히데야스는 내 양자이니 무용의 마음가짐은 모두 이 히데요시를 닮은 것이다."
원문
天正十五年四月一日筑前岩出城熊谷備中守居之を秀吉公一𣆅責に仰せ附けられ候。御先手蒲生氏鄕、前田利家なり。其二番備は、羽柴三河少將秀康、佐々陸奧守、水野忠重なり。山半分御上りの時、落城の間御上り候こと御無用、利家、氏鄕より申し來る。秀康御年十四歲なり。手に御逢ひ無㆑之とて、無念に思召落淚なされ候を、佐々成政深く感じ、さすが家康の御子にて候。今日手に御逢なしとて、御せきなされ候て、落淚なされ候。我にも樣々諫め申候由、家康公に似申候、と譽め申候時に、秀吉公仰せには、左樣にてなし。秀康は我養子なれば、武勇の心入は皆々秀吉に似たる故なり、と仰せられしとなり。