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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키가하라 전투의 승리와 이나츠구 우콘이 공을 세운 일

· 拾遺 卷之二 제11화 · 원문(일본어) 쪽

에도 시대 중기 오카야마번의 유학자 유아사 조잔(湯浅常山)이 센고쿠~에도 초 무장들의 일화를 모은 『조잔키단(常山紀談)』(1739년 자서)의 한국어 번역이다. 후대에 전해진 이야기를 모은 책이라 역사적 사실과 다른 대목이 있다.

게이초(慶長) 5년 경자년(1600) 세키가하라(關原) 전투는 9월 15일이었다. 그 전날 낮이 되기 전에 오고쇼(大御所,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아카사카(赤坂)에 진을 쳤다. 한낮 무렵 이시다 미츠나리(石田三成) 쪽에서 시마 사콘(島左近)과 가모 빗추(蒲生備中, 미츠나리의 가신 가모 사토이에)를 대장으로 삼아 구이세가와(杭瀨川)를 건너와 벼를 베며 적을 꾀어내려 했다. 그곳은 나카무라 이치가쿠(中村一學)가 진을 친 곳 바로 앞이었다. 다케다 고로베에(竹田五郞兵衞, 2천 석 녹봉, 카즈우지(一氏)의 조카사위)가 길이 3간쯤 되는 새털 막대 사시모노(指物, 등에 꽂는 깃발)를 달고 진영의 담을 뛰어넘어 지부(治部, 이시다 미츠나리)의 군사에게 덤벼들어 세 사람에게 창을 먹였으나 조총에 맞아 쓰러졌다. 다케다가 죽는 것을 보고 나카무라의 병사들이 목책을 짓밟아 부수고 앞다투어 달려 나갔다. 노이시키 다노모(野一色賴母, 금빛 미츠헤이(三幣, 세 갈래 종이 장식) 사시모노)와 야부 다쿠미(藪內匠)가 뒤이어 덤벼들었다. 지부 쪽에서는 미즈노 쇼지로(水野庄次郞, 후에 아사카 사마노스케(淺香左馬介)라 함), 하야시 한스케(林半介, 지부의 츠카이반(使番, 전령)), 이젠 다노모(伊前賴母) 등 이럭저럭 500여 명이 나아갔다. 비젠(備前) 군에서는 아카시 가몬(明石掃部, 우키타(宇喜田)의 가로(家老, 가문의 최고위 가신), 1만 석)과 혼다 쓰시마노카미(本田對馬守) 두 대장에 이나바 스케노조(稻葉助之丞), 후와 다쿠미(不破內匠) 등 800여 명이 나왔다. 이시다 쪽 모노가시라(物頭, 부대장) 시마 사콘과 가모 빗추는 기도(木戶) 이시키무라(一色村)의 대숲에 복병을 숨겨 두고 물러났다. 나카무라 군은 이를 모르고 나아갔는데, 복병이 일어나 쳐 대고 활을 쏘아 대자 양쪽이 버티며 창싸움이 시작되었다. 나카무라 가신 나리아이 헤이자에몬(成合平左衞門)이 맨 먼저 창을 맞대었다가 전사했다. 그 목은 이노오 진다유(猪尾甚太夫)가 베었고, 나카무라 군은 무너졌다. 가로 노이시키 다노모는 새털 경단 두 개 모양 우마지루시(馬印, 대장의 위치를 알리는 표지)를 받아 들고 강 동쪽에 세우고는 "나는 한 발짝도 물러서지 않겠다. 이 무슨 꼴이냐, 모두 보기 흉하게 무너지는구나" 하고 꾸짖었다. 야부 다쿠미(6천 석 녹봉, 나카무라의 가로)가 그 옆으로 물러나며 지나갔다. 다노모가 다쿠미에게 "어째서 되돌아서지 않느냐" 하고 말을 걸자, 다쿠미는 돌아보며 "부상을 입어 되돌아서지 못하오" 하고 사정을 밝히고는 강을 서쪽으로 말을 타고 건넜다. 핫토리 고젠(服部小膳)과 다카야 규베에(高屋九兵衞)는 둘 다 활·조총대의 우두머리로 이름난 무사였지만, 밀려서 무너졌다. 노이시키 다노모는 금빛 미츠헤이 사시모노를 달고 말을 되돌려 여러 번 싸웠는데, 지부쇼유(治部少輔, 이시다 미츠나리)의 가신 가이호 이치로에몬(海北市郞右衞門)이 조총으로 쏘았다. 다노모는 총에 맞아 말에서 떨어져 그대로 전사했다. 그의 구미코(組子, 휘하 병사) 마츠무라 세이스케(松村淸助)가 다노모 시신의 와타가미(綿嚙, 갑옷을 어깨에 거는 끈)를 잡고 끌며 물러났지만, 지부의 군사가 바짝 따라붙었으므로 세이스케는 다노모의 겉띠를 끊고 칼과 와키자시(脇差, 허리에 차는 짧은 칼)만 챙겨 물러났다. 나중에 다노모의 목은 도미무라(富村)라는 무사가 베었다. 지부 쪽 대군이 거듭 뒤쫓아 왔으므로 나카무라 가신 나카무라 신스케(中村新介), 가와케 신파치(河毛新八), 같은 가와케 지로(次郞), 하라다(原田), 우메즈(梅津), 아마노(天野), 호리구치(堀口) 등 28명이 전사했다. 아마리 사헤에(甘利左兵衞)는 강 한가운데서 맞서 막아 싸웠다. 창에 두 군데를 찔려 물러나지 못하는 것을 이시다의 병사들이 뒤쫓아 따라붙었다. 요시다 사다유(吉田左太夫)가 되돌아서서 적을 쫓아내고 아마리를 물러나게 했다.

나카무라와 나란히 진을 친 것은 아리마 겐바노카미 토요우지(有馬玄蕃頭豐氏)였다. 이 싸움을 보고 아리마의 병사 수십 명이 목책을 넘어 나아갔다. 이나츠구 우콘(稻次右近, 새털 반달 사시모노)과 오카모토 고로에몬(岡本五郞右衞門)이 맨 앞에 나서 강을 말로 건넜고, 무너진 나카무라 군을 뒤쫓아 오던 지부의 군세와 마주치는 대로 맞붙었다. 이나츠구 우콘이 말을 강기슭으로 몰아 올라서자, 금빛 세이사츠(制札, 고시판) 모양 장식을 꼭대기에 세운 투구를 쓴 자가 요코야마 겐모츠(橫山監物)라 이름을 대며 덤벼들었다. 우콘과 서로 말 위에서 맞붙다가 말에서 내려 맞잡고 뒹굴었는데, 우콘이 밑에 깔렸다. 우콘의 로토(郞等, 종자) 기시 마타자에몬(岸又左衞門)이 겐모츠 갑옷의 와타가미를 잡고 뒤집어 엎으니 우콘이 위가 되었다. 겐모츠의 와카토(若黨, 젊은 종자)가 달려와 우콘 투구의 시코로(錣, 투구 뒤로 늘어뜨려 목을 가리는 부분)에 매달려 뒤로 젖혔다. 우콘이 떨쳐 내려고 머리를 흔드는 순간 우콘의 와카토가 달려와 겐모츠의 종자를 베니, 그자는 우콘의 투구를 놓고 칼을 뽑아 맞서 싸웠다. 그때 호리오 시나노노카미 타다우지(堀尾信濃守忠氏)의 호로슈(母衣衆, 등에 호로를 메는 정예 전령 무사) 하나가 달려와서는 적과 아군도 가리지 않고 우콘의 와카토를 아군인데도 죽이고 목을 베어 돌아갔다. 그사이 우콘은 겐모츠의 목을 베고 일어나 겐모츠의 와카토까지 베어 쓰러뜨리고 그 목도 베어, 목을 둘이나 베는 공을 세웠다. 와카토의 목은 안장의 시오데(鹽手, 안장 양옆의 고리)에 매달고, 겐모츠의 목은 손에 들고서 말을 천천히 걸려 나카무라의 진 안을 지나가니, 보는 사람마다 칭찬하지 않는 이가 없었다.

그 뒤 비젠의 히데이에(秀家)의 가로 아카시 가몬이 300여 명을 이끌고 이케지리(池尻)에서 후쿠다 나와테(福田繩手, 논 사이 둑길)로 돌아 들이닥쳤다. 나카무라 이치가쿠 군이 흐트러지자 야노 스케노신(矢野助之進, 금빛 우치와(團, 부채) 사시모노)이 단 한 기로 되돌아서서 적의 대군에 맞섰다. 하야시 분다유(林文太夫, 붉은 호로(母衣, 등에 메는 바람막이 천)와 금빛 도라지 삿갓)도 되돌아서서, 동료 우메다 다이조(梅田大藏)가 깊은 상처를 입어 물러나지 못하는 것을 도와 물러나게 하려 했다. 스케노신이 이를 똑바로 보고 "우메다를 데리고 물러날 것이 아니라 이 많은 적을 막으시오" 하고 소리치자, 분다유는 우메다를 버려두고 말에 박차를 가해 달려 나갔다. 스케노신도 말을 차고 나가 두 기가 나란히 적진으로 뛰어드니, 아카시 가몬과 가모 빗추의 군사가 무너졌다. 두 사람은 승세를 타고 뒤쫓아 쳤다.

아카사카 본진에서 오고쇼가 멀리서 이를 보고 "중대한 결전을 내일로 앞두고 쓸데없는 전투를 벌여 군사를 잃는구나. 어서 거두어 데리고 돌아오너라" 하며 몹시 노했다. 와타나베 추에몬 시게츠나(渡邊忠右衞門重綱, 금빛 물통 사시모노)를 보냈지만, 적과 아군이 서로 물고 늘어져 떨어지지 못했다. 오고쇼는 몹시 노하여 이이 나오마사(井伊直政, 효부쇼유(兵部少輔), 성성이빛 하오리(羽織), 금빛 파리채 우마지루시)에 혼다 나이키 타다토모(本多內記忠朝, 후에 이즈모노카미(出雲守))를 딸려 보냈다. 나오마사와 타다토모가 나카무라 진에 달려 들어가 어서 물러나라고 일렀을 때, 야노 스케노신과 하야시 분다유는 적을 몰아붙이며 싸우고 있었다. 나오마사가 말을 몰아 다가가 "어째서 이리 어지럽게 구느냐. 어서 물러나라" 하고 지시했다. 스케노신과 분다유는 돌아보며 "여기는 저희 둘에게 맡기십시오. 효부 님과 나이키 님은 아리마 겐바의 부대 쪽에 지시하십시오" 하고 내뱉고는 적에게 베어 들어가, 마침내 오가키(大垣) 쪽 군사를 베어 무너뜨렸다. 그 뒤로 적과 아군이 뒤섞여 맞붙었다. 이때 지부쇼유의 병사 미즈노 쇼지로가 담비 가죽 하오리(羽織, 겉옷)에 은빛 큰 못 장식 투구 차림으로 말을 타고 와서, 나카무라의 호로 무사로 다쳐서 물러나지 못하던 우메다 다이조의 목을 베었다. 그러고는 오가키(大柿)로 말을 돌려, 미츠나리가 있던 모퉁이 망루 아래로 가서 "미즈노 쇼지로입니다. 공을 세웠으니 간도(勘當, 주군이 내린 의절)를 풀어 주십시오" 하고 외쳤다. 지부쇼유가 "알았다. 공은 확인했으니 선봉을 맡아 다오. 어서 가서 아군을 거두어 데려와라" 하고 말하니, 쇼지로는 다시 선봉으로 갔다.

아리마 겐바노카미와 다나카 효부(田中兵部)도 나카무라 이치가쿠를 도와 많은 군사로 덤벼들었으므로, 히데이에 가신 이나바 스케노조(금빛 기리사키(切さき, 갈라진 깃발) 사시모노)와 지부의 츠카이반 하야시 한스케가 말을 탄 채 조금씩 물러나며 몇 번이고 신가리(殿, 퇴각하는 군의 맨 뒤를 막는 일)를 맡았다. 아카시 가몬도 둑을 따라 말을 몰아 올라가 말을 빙빙 돌리며 신가리를 맡았다. 이치단무라(一旦村)의 대숲 아래에서 나카무라 군과 아리마 군이 바짝 따라붙은 곳에서, 마키노 덴조(牧野傳藏)의 병사들과 비젠 군 몇몇이 버티고 섰다. 니와 도켄(丹羽道監)과 이시구로 토베에(石黑藤兵衞)가 버티어 선 것은 훌륭했다. 이렇게 해가 저물어 갈 무렵 이이 나오마사가 헤이(幣, 종이 술을 단 지휘용 채)를 잡고 나카무라·아리마 군을 거두어 돌아갔다.

원문
慶長五庚子年關原御一戰、九月十五日其前日晝前に、大御所は赤坂へ御著陣被㆑遊候。晝時分に石田三成方より島左近、蒲生備中大將にて杭瀨川を越え、刈田誘引を掛け、其口中村一學陣取の際なり。竹田五郞兵衞二千石取一氏姪聟三間計の鳥毛の棒の指物にて陣所の塀を跳越え、治部が勢へ掛合ひ、三人鎗附候を鐵炮にて打倒し候。竹田が討たれ候を見て、中村が兵共柵を蹈破り爭うて駈出し候。野一色賴母金の三幣さしもの藪內匠推續き懸り候。治部方には水野庄次郞後號淺香左馬介林半介治部が使番伊前賴母などかれこれ五百餘進み候。備前勢には明石掃部宇喜田家老一萬石領す本田對馬守兩大將に稻葉助之丞不破內匠等、八百餘出候。石田が物頭島左近、蒲生備中、伏兵を木戶一色村の藪に伏置きて引き候により、中村が勢是を知らず、進み申さる處を打立て射立候と兩方堪へ鎗初り候。中村が內成合平左衞門一番やり仕り討死仕り候。首は猪尾甚太夫取り中村勢敗軍仕候。家老野一色賴母鳥毛二の團子の馬印を取りて、川の東に押立て、一足も引くまじく候。さて〱何も敗軍見苦しく候、と罵り候。藪內匠六千石取中村家老其脇を引て通り候。內匠に、何とて返し不㆑申や、と賴母言をかけ候。內匠振顧、手負候故返し不㆑申候、と斷り、川を西へ乘渡り候。服部小膳、高屋九兵衞、何も弓鐵炮のもの頭どもにて覺の兵にて候へども、押立てられて崩れ申候。野一色賴母は、金の三幣の指物にて馬を引返し數度戰ひ候を、治部少輔が內海北市郞右衞門鐵炮にて打ち申し候。賴母炮に當り馬より落ち則ち討死。其組子松村淸助、賴母が死體の綿嚙を取りて引ずり退き候へども、治部人數附立候故、賴母表帶を切り、刀脇差ばかり取りて退き申候。後にて賴母首は富村と申す兵取り申候。治部方多勢追重り候故、中村家人、中村新介、河毛新八、同次郞、原田梅津、天野、堀口等二十八人討死仕り候。甘利左兵衞は川中にて立合ひ防戰ひ候。鎗手二ヶ所負ひ退きかね候を、石田が兵共追附候。吉田左太夫返合せ追拂ひて甘利を退け候。中村並の陣は有馬玄蕃頭豐氏にて候。此合戰を見て、有馬が兵共數十人柵を越えて進み、稻次右近鳥毛半月さしもの、岡本五郞右衞門眞先に進みて川を乘渡し、治部力の勢中村敗軍を追來り候。出合頭に致候。稻次右近馬を岸へ乘上候、と金の制札の頭上立物の兜著て、橫山監物と名乘り懸り候。右近と互に馬上にて渡合ひ、其後馬より下立ち組打ちになり、右近下になり申すを、右近郞等岸又左衞門、監物が鎧の綿嚙取りて引覆し候へば、右近上になり候。監物若黨駈附、右近が兜の錣に取附き引仰候を、右近振放さんと頭を振る處へ、右近が若黨駈附け監物郞等を切り候へば、右近が兜を放し拔合せ防合ひ申候。然る所へ堀尾信濃守忠氏の母衣の衆一人駈け來り、敵味方をも辨へず右近が若黨を味方討に致し、首を取り引返し候。其內に右近は監物が首取り立上り、監物が若黨をも切伏せ、其首を取り二つまで高名し、若黨が首をば鞍の鹽手に附け、監物首を奪附けて手に提げ、馬を靜々と步せ、中村が陣中を通りけるに、見る人譽めぬ者はなし。其場過ぎて備前秀家の家老明石掃部三百餘にて、池尻より福田繩手へ廻懸り來り候。中村一學人數亂れ候を、矢野助之進金の團のさしもの只一騎にて取て返し、大勢の敵へ立向ひ候。林文太夫赤母衣金の桔梗笠のも返し合ひ、傍輩の梅田大藏が深手負ひて退きかね候を助け退き申候。助之進屹と見附て、梅田を助け退け候はんより、此大勢の敵を防ぎ候へ、と言葉を懸けられ、文太夫は梅田を捨てて馬に聲をかけ乘出し、助之進も馬を蹈立て二騎連て掛入ると、明石掃部、蒲生備中が人數崩れ申候。兩人勝に乘つて追打候。赤坂御本陣より大御所御遠見なされ、大事の合戰を明日に抱へ、無益の軍致し人數を損じ申候。早々引揚げ連て戾り候へ、と事々しく御腹立なり。渡邊忠右衞門重綱金手桶のさしものを遣され候へども、敵味方喰止め別れかね候。大御所殊の外御怒りなされ、井伊直政兵部少輔猩々緋の羽織金の蠅取の馬印本多內記忠朝後に出雲守を御差添へなされ遣され候。直政、忠朝は中村の陣へ駈入り、早々引上申すべき旨申渡し候とき、矢野助之進、林文太夫敵を追立て〱戰ひ申候。直政乘附け、何とてみだるく仕候。早々引上げ候へ、と下知致され候。助之進、文太夫振返り、此所をば此兩人に御任せ候へ。兵部殿、內記殿には有馬玄蕃手へ御下知候へ、と申し捨て切懸り、遂に大垣方を切崩し、夫より敵味方入交り競合候。此時治部少輔が兵水野庄次郞鼦の皮の羽織、銀の大釘の立物の冑にて乘來り、中村母衣の者梅田大藏が手負ひて引兼ね候を、首を取り、大柿へ乘返り、三成隅矢倉に居候下へ參り、水野庄次郞にて御座候。高名仕候間御勘當御免下され候へ、と呼り候。治部少輔、如何にも心得たり。高名も見屆候間先手を賴み候。早々參り引取りくれ候へ、と申候に附、又庄次郞は先手へ參り候。此有馬玄蕃頭も田中兵部も、中村一學を助けて多勢にて懸り候故、秀家內稻葉助之丞金切さきさしもの治部が使番林半助乘下り〱殿仕候。明石掃部も堤を傳ひ乘上げ、馬に輪をかけ殿仕候。一旦村の籔の下にて中村勢有馬勢犇と附く處にて、牧野傳藏が兵共、又備前勢少々踏留り候。丹羽道監と石黑藤兵衞立堪へたり、見事に候。斯て日も暮れかゝり、井伊直政幣を取りて、中村有馬が勢を引上げて歸られ候。

원문(일본어) 쪽 e539.p01

다른 설에 따르면, 나카무라의 군사들이 오가키 군에게 붙잡혀 아직 둑 아래에 있을 때, 오고쇼가 혼다 나카츠카사노타이후 타다카츠(本多中務太輔忠勝)를 불러 "너는 서둘러 달려가 나카무라의 군사를 거두어 오라" 하고 명했다. 타다카츠는 곧 어전을 물러나 기병과 아시가루(足輕, 보병)를 함께 거느리고 구이세가와(株瀨川)에 이르러 나카무라의 병사들을 물러나게 하고, 자신은 맨 뒤를 막으며 물러났다. 히데이에와 미츠나리 두 집안의 병사들이 여전히 붙잡아 두려고 기세를 올렸지만, 혼다가 차례로 끊어 물러나는 대열이 흐트러지지 않았으므로 과연 함부로 달라붙지도 못하고 멈춰 서 있었다. 그때 히데이에의 무사 이나바 스케노조(금빛 기리사키에 가지를 매단 등 깃발을 꽂음)와 미츠나리의 가신 하야시 한스케(林半助, 흰 시나이(しなひ, 휘어지는 긴 깃대) 사시모노)가 여러 병사보다 앞서 나와 타다카츠의 진 가까이 다가와서는 둘이 함께 말을 빙빙 돌렸다. 오고쇼가 이를 보고 "무사다운 모습이 훌륭하다" 하고 말했다고 한다. 위 이야기는 실록이라 하기에 빌려 보았으므로 여기에 적는다. 그렇다면 이때 이이 가문이 맨 뒤를 막았다는 것은 틀린 것일까. 다시 알아보고 고쳐 써야 할지도 모르겠다.

원문
一說、中村が軍士等大垣勢に掛留められ、未堤の下に有りけるを、大御所本多中務太輔忠勝を召して、其方急ぎ馳越え中村が手の者を引上ぐべし、と仰せられ、忠勝頓て御前を退き、騎兵と足輕を相倶して株瀨川に到り、中村が兵士を引取らせ、忠勝は後殿して退きけるに、秀家、三成兩家の兵士猶喰留めんと勇みけれども、本多が繰引の列伍亂れざる故に、さすがひら附にもえせず扣へけるが、秀家の軍士稻葉助之丞金切さき枝釣の背旗さす三成家人林半助白しなひ指しもの兩人諸兵に先達て進み來り、忠勝が備に近附きて兩人ともに輪を掛くる。大御所之を御覽あつて、武者振見事なり、と仰せられしとかや。右の品實錄なりとて借求め見し故に爰に記す。然る時は、井伊氏此時の殿は相違なるにや、猶又尋ねて可㆓書改㆒か。

원문(일본어) 쪽 e539.p02

이때 오고쇼는 아카사카 오카야마(岡山)의 본진에서 구경하고 있었다. 이이 나오마사가 군사를 움직이는 모습이 마치 제 손발을 부리듯 지시하여 물러났으니 볼만한 구경이었다고 사람들이 말했다. 히데나가(秀長)와 미츠나리의 군사도 길게 늘어서 천천히 오가키 성으로 물러 들어갔는데, 그 군세 가운데 흰 시나이를 꽂은 무사 한 기가 말을 탄 채 물러나며 훌륭하게 맨 뒤를 막았다. 오고쇼는 "흰 시나이가 훌륭하다" 하고 여러 번 말했다. 이때 나카무라 쪽에서는 빼어난 병사 36기가 전사했고, 특히 이치가쿠의 가로 노이시키 다노모가 전사했다. 아군이 벤 목은 아리마 겐바노카미의 가신 이나츠구 우콘이 벤 요코야마 겐모츠 주종 두 사람의 목뿐이었다. 이때 우콘이 본진으로 오자 오고쇼가 보고 "새털 반달은 아까 이 진 아래를 지나 적에게 향하던 자다. 공을 세웠느냐. 누구의 가신이냐" 하고 물었다. 아리마 호인(有馬法印)이 곁에 있다가 "같은 아리마 집안 겐바의 가신입니다" 하고 아뢰었다. 곧 쿠비초(首帳, 벤 목을 기록하는 장부)에 올렸는데, 이나츠구가 "나보다 먼저 목 하나를 가져온 사람이 있습니까" 하고 물었다. 서기가 "있소. 호리오 신슈(信州, 시나노노카미)의 호로 무사가 목 하나를 가져와 장부에 올렸소" 하고 말했다. 이나츠구는 이를 듣고 "그것은 제 가신을 아군인데도 죽인 것입니다. 그 장부에서 지워 주십시오" 하고 말했다. 곧 오고쇼가 듣고 "무슨 말을 하느냐" 하고 물었다. 서기가 우콘이 한 말을 그대로 아뢰니, 오고쇼는 "이렇게 뒤섞여 싸우는 전투에서는 아군을 죽인 것이라도 공이 된 예가 있으니, 쿠비초는 지우지 않겠다" 하고 말했다. 이 일이 호리오 신슈 쪽에 알려지자, 호로 무사들이 "적과 아군도 가려보지 못하는 허둥대는 자와는 호로 무사 동료가 될 수 없습니다. 그를 그대로 두시겠다면 저희 호로(𦀸)를 반납하겠습니다" 하고 호소했다. 호리오 다테와키 요시하루(堀尾帶刀吉晴)가 듣고 "옳은 말이다" 하며 그자의 호로를 거두어들이고, 동료에서 빼되 녹봉을 올려 주고 궁수 20명을 맡겼다고 한다. 아리마 겐바는 이나츠구 우콘의 공에 감탄하여, 본래 영지 500석에 6천 석을 더해 주고 가로로 삼았다. 우콘은 지난날 히젠(肥前) 시마바라(島原)에서 여든다섯 살로 전사했다.

원문
此時、大御所は赤坂岡山の本陣より御見物なり。井伊直政人數の擧樣中々足手を使ふ樣に下知して引取り候。能見物なり、と人々申し候。秀長、三成人數も漫々と棚引大垣城へ引入れ、其勢の內に白しなひ差したる武者一騎乘下り、見事に殿仕候。大御所白しなひ見事に候、と度々仰せられ候。此時中村が方究竟の兵士三十六騎討死、殊に一學家老野一色賴母討死仕る。味方へ討取り申候首は、有馬玄蕃頭內稻次右近が討取り候。橫山監物主從二人の首計なり。此時右近は御本陣へ參り候を、大御所御覽なされ、鳥毛の半月は先刻此陣下を通り、敵に向ひ候き。高名仕候や、誰が者と御尋あり。有馬法印御傍に居られ、同氏玄蕃家人、と申上ぐる。則ち首帳に附け申し、稻次申候は、我より先に首一つ持來りて候仁有り候や、と云ふ。筆者申候は、中々、堀尾信州の母衣の者首一つ持來りて帳に附け候、といふ。稻次承り、夫は我家人を味方討に仕候。其御帳を消し候ひて下され、と申す。則ち大御所御聞なされ、何事を申すや、と御尋ね被㆑成候。筆者承り、右近が申候通りを申上候へば、箇樣の打交り軍には、味方討にても高名になり候例もあれば、首帳消し申す間敷、と仰せられ候。此時堀尾信州方へ聞え、母衣十走の兵共敵味方見分ず、狼狽者母衣仲間には不㆓罷成㆒候。其儘御置可㆑有候はば、𦀸を差上候、と訴訟仕り候。堀尾帶刀吉晴聞き、尤に候、とて彼者の𦀸をば召上げ、仲間をはづれ加增をなし、弓二十人預り候よし。有馬玄蕃は、稻次右近高名を感じ、本地五百石の上に六千石加增を遣し、家老に致され候。先年肥前島原にて八十五歲にて討死仕候。

원문(일본어) 쪽 e539.p03

번역: historyfoli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