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이초(慶長) 5년 경자년(1600) 세키가하라(關原) 전투는 9월 15일이었다. 그 전날 낮이 되기 전에 오고쇼(大御所,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아카사카(赤坂)에 진을 쳤다. 한낮 무렵 이시다 미츠나리(石田三成) 쪽에서 시마 사콘(島左近)과 가모 빗추(蒲生備中, 미츠나리의 가신 가모 사토이에)를 대장으로 삼아 구이세가와(杭瀨川)를 건너와 벼를 베며 적을 꾀어내려 했다. 그곳은 나카무라 이치가쿠(中村一學)가 진을 친 곳 바로 앞이었다. 다케다 고로베에(竹田五郞兵衞, 2천 석 녹봉, 카즈우지(一氏)의 조카사위)가 길이 3간쯤 되는 새털 막대 사시모노(指物, 등에 꽂는 깃발)를 달고 진영의 담을 뛰어넘어 지부(治部, 이시다 미츠나리)의 군사에게 덤벼들어 세 사람에게 창을 먹였으나 조총에 맞아 쓰러졌다. 다케다가 죽는 것을 보고 나카무라의 병사들이 목책을 짓밟아 부수고 앞다투어 달려 나갔다. 노이시키 다노모(野一色賴母, 금빛 미츠헤이(三幣, 세 갈래 종이 장식) 사시모노)와 야부 다쿠미(藪內匠)가 뒤이어 덤벼들었다. 지부 쪽에서는 미즈노 쇼지로(水野庄次郞, 후에 아사카 사마노스케(淺香左馬介)라 함), 하야시 한스케(林半介, 지부의 츠카이반(使番, 전령)), 이젠 다노모(伊前賴母) 등 이럭저럭 500여 명이 나아갔다. 비젠(備前) 군에서는 아카시 가몬(明石掃部, 우키타(宇喜田)의 가로(家老, 가문의 최고위 가신), 1만 석)과 혼다 쓰시마노카미(本田對馬守) 두 대장에 이나바 스케노조(稻葉助之丞), 후와 다쿠미(不破內匠) 등 800여 명이 나왔다. 이시다 쪽 모노가시라(物頭, 부대장) 시마 사콘과 가모 빗추는 기도(木戶) 이시키무라(一色村)의 대숲에 복병을 숨겨 두고 물러났다. 나카무라 군은 이를 모르고 나아갔는데, 복병이 일어나 쳐 대고 활을 쏘아 대자 양쪽이 버티며 창싸움이 시작되었다. 나카무라 가신 나리아이 헤이자에몬(成合平左衞門)이 맨 먼저 창을 맞대었다가 전사했다. 그 목은 이노오 진다유(猪尾甚太夫)가 베었고, 나카무라 군은 무너졌다. 가로 노이시키 다노모는 새털 경단 두 개 모양 우마지루시(馬印, 대장의 위치를 알리는 표지)를 받아 들고 강 동쪽에 세우고는 "나는 한 발짝도 물러서지 않겠다. 이 무슨 꼴이냐, 모두 보기 흉하게 무너지는구나" 하고 꾸짖었다. 야부 다쿠미(6천 석 녹봉, 나카무라의 가로)가 그 옆으로 물러나며 지나갔다. 다노모가 다쿠미에게 "어째서 되돌아서지 않느냐" 하고 말을 걸자, 다쿠미는 돌아보며 "부상을 입어 되돌아서지 못하오" 하고 사정을 밝히고는 강을 서쪽으로 말을 타고 건넜다. 핫토리 고젠(服部小膳)과 다카야 규베에(高屋九兵衞)는 둘 다 활·조총대의 우두머리로 이름난 무사였지만, 밀려서 무너졌다. 노이시키 다노모는 금빛 미츠헤이 사시모노를 달고 말을 되돌려 여러 번 싸웠는데, 지부쇼유(治部少輔, 이시다 미츠나리)의 가신 가이호 이치로에몬(海北市郞右衞門)이 조총으로 쏘았다. 다노모는 총에 맞아 말에서 떨어져 그대로 전사했다. 그의 구미코(組子, 휘하 병사) 마츠무라 세이스케(松村淸助)가 다노모 시신의 와타가미(綿嚙, 갑옷을 어깨에 거는 끈)를 잡고 끌며 물러났지만, 지부의 군사가 바짝 따라붙었으므로 세이스케는 다노모의 겉띠를 끊고 칼과 와키자시(脇差, 허리에 차는 짧은 칼)만 챙겨 물러났다. 나중에 다노모의 목은 도미무라(富村)라는 무사가 베었다. 지부 쪽 대군이 거듭 뒤쫓아 왔으므로 나카무라 가신 나카무라 신스케(中村新介), 가와케 신파치(河毛新八), 같은 가와케 지로(次郞), 하라다(原田), 우메즈(梅津), 아마노(天野), 호리구치(堀口) 등 28명이 전사했다. 아마리 사헤에(甘利左兵衞)는 강 한가운데서 맞서 막아 싸웠다. 창에 두 군데를 찔려 물러나지 못하는 것을 이시다의 병사들이 뒤쫓아 따라붙었다. 요시다 사다유(吉田左太夫)가 되돌아서서 적을 쫓아내고 아마리를 물러나게 했다.
나카무라와 나란히 진을 친 것은 아리마 겐바노카미 토요우지(有馬玄蕃頭豐氏)였다. 이 싸움을 보고 아리마의 병사 수십 명이 목책을 넘어 나아갔다. 이나츠구 우콘(稻次右近, 새털 반달 사시모노)과 오카모토 고로에몬(岡本五郞右衞門)이 맨 앞에 나서 강을 말로 건넜고, 무너진 나카무라 군을 뒤쫓아 오던 지부의 군세와 마주치는 대로 맞붙었다. 이나츠구 우콘이 말을 강기슭으로 몰아 올라서자, 금빛 세이사츠(制札, 고시판) 모양 장식을 꼭대기에 세운 투구를 쓴 자가 요코야마 겐모츠(橫山監物)라 이름을 대며 덤벼들었다. 우콘과 서로 말 위에서 맞붙다가 말에서 내려 맞잡고 뒹굴었는데, 우콘이 밑에 깔렸다. 우콘의 로토(郞等, 종자) 기시 마타자에몬(岸又左衞門)이 겐모츠 갑옷의 와타가미를 잡고 뒤집어 엎으니 우콘이 위가 되었다. 겐모츠의 와카토(若黨, 젊은 종자)가 달려와 우콘 투구의 시코로(錣, 투구 뒤로 늘어뜨려 목을 가리는 부분)에 매달려 뒤로 젖혔다. 우콘이 떨쳐 내려고 머리를 흔드는 순간 우콘의 와카토가 달려와 겐모츠의 종자를 베니, 그자는 우콘의 투구를 놓고 칼을 뽑아 맞서 싸웠다. 그때 호리오 시나노노카미 타다우지(堀尾信濃守忠氏)의 호로슈(母衣衆, 등에 호로를 메는 정예 전령 무사) 하나가 달려와서는 적과 아군도 가리지 않고 우콘의 와카토를 아군인데도 죽이고 목을 베어 돌아갔다. 그사이 우콘은 겐모츠의 목을 베고 일어나 겐모츠의 와카토까지 베어 쓰러뜨리고 그 목도 베어, 목을 둘이나 베는 공을 세웠다. 와카토의 목은 안장의 시오데(鹽手, 안장 양옆의 고리)에 매달고, 겐모츠의 목은 손에 들고서 말을 천천히 걸려 나카무라의 진 안을 지나가니, 보는 사람마다 칭찬하지 않는 이가 없었다.
그 뒤 비젠의 히데이에(秀家)의 가로 아카시 가몬이 300여 명을 이끌고 이케지리(池尻)에서 후쿠다 나와테(福田繩手, 논 사이 둑길)로 돌아 들이닥쳤다. 나카무라 이치가쿠 군이 흐트러지자 야노 스케노신(矢野助之進, 금빛 우치와(團, 부채) 사시모노)이 단 한 기로 되돌아서서 적의 대군에 맞섰다. 하야시 분다유(林文太夫, 붉은 호로(母衣, 등에 메는 바람막이 천)와 금빛 도라지 삿갓)도 되돌아서서, 동료 우메다 다이조(梅田大藏)가 깊은 상처를 입어 물러나지 못하는 것을 도와 물러나게 하려 했다. 스케노신이 이를 똑바로 보고 "우메다를 데리고 물러날 것이 아니라 이 많은 적을 막으시오" 하고 소리치자, 분다유는 우메다를 버려두고 말에 박차를 가해 달려 나갔다. 스케노신도 말을 차고 나가 두 기가 나란히 적진으로 뛰어드니, 아카시 가몬과 가모 빗추의 군사가 무너졌다. 두 사람은 승세를 타고 뒤쫓아 쳤다.
아카사카 본진에서 오고쇼가 멀리서 이를 보고 "중대한 결전을 내일로 앞두고 쓸데없는 전투를 벌여 군사를 잃는구나. 어서 거두어 데리고 돌아오너라" 하며 몹시 노했다. 와타나베 추에몬 시게츠나(渡邊忠右衞門重綱, 금빛 물통 사시모노)를 보냈지만, 적과 아군이 서로 물고 늘어져 떨어지지 못했다. 오고쇼는 몹시 노하여 이이 나오마사(井伊直政, 효부쇼유(兵部少輔), 성성이빛 하오리(羽織), 금빛 파리채 우마지루시)에 혼다 나이키 타다토모(本多內記忠朝, 후에 이즈모노카미(出雲守))를 딸려 보냈다. 나오마사와 타다토모가 나카무라 진에 달려 들어가 어서 물러나라고 일렀을 때, 야노 스케노신과 하야시 분다유는 적을 몰아붙이며 싸우고 있었다. 나오마사가 말을 몰아 다가가 "어째서 이리 어지럽게 구느냐. 어서 물러나라" 하고 지시했다. 스케노신과 분다유는 돌아보며 "여기는 저희 둘에게 맡기십시오. 효부 님과 나이키 님은 아리마 겐바의 부대 쪽에 지시하십시오" 하고 내뱉고는 적에게 베어 들어가, 마침내 오가키(大垣) 쪽 군사를 베어 무너뜨렸다. 그 뒤로 적과 아군이 뒤섞여 맞붙었다. 이때 지부쇼유의 병사 미즈노 쇼지로가 담비 가죽 하오리(羽織, 겉옷)에 은빛 큰 못 장식 투구 차림으로 말을 타고 와서, 나카무라의 호로 무사로 다쳐서 물러나지 못하던 우메다 다이조의 목을 베었다. 그러고는 오가키(大柿)로 말을 돌려, 미츠나리가 있던 모퉁이 망루 아래로 가서 "미즈노 쇼지로입니다. 공을 세웠으니 간도(勘當, 주군이 내린 의절)를 풀어 주십시오" 하고 외쳤다. 지부쇼유가 "알았다. 공은 확인했으니 선봉을 맡아 다오. 어서 가서 아군을 거두어 데려와라" 하고 말하니, 쇼지로는 다시 선봉으로 갔다.
아리마 겐바노카미와 다나카 효부(田中兵部)도 나카무라 이치가쿠를 도와 많은 군사로 덤벼들었으므로, 히데이에 가신 이나바 스케노조(금빛 기리사키(切さき, 갈라진 깃발) 사시모노)와 지부의 츠카이반 하야시 한스케가 말을 탄 채 조금씩 물러나며 몇 번이고 신가리(殿, 퇴각하는 군의 맨 뒤를 막는 일)를 맡았다. 아카시 가몬도 둑을 따라 말을 몰아 올라가 말을 빙빙 돌리며 신가리를 맡았다. 이치단무라(一旦村)의 대숲 아래에서 나카무라 군과 아리마 군이 바짝 따라붙은 곳에서, 마키노 덴조(牧野傳藏)의 병사들과 비젠 군 몇몇이 버티고 섰다. 니와 도켄(丹羽道監)과 이시구로 토베에(石黑藤兵衞)가 버티어 선 것은 훌륭했다. 이렇게 해가 저물어 갈 무렵 이이 나오마사가 헤이(幣, 종이 술을 단 지휘용 채)를 잡고 나카무라·아리마 군을 거두어 돌아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