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이초(慶長) 15년(1610) 봄, 히데타다(秀忠) 공이 미카와(參州) 다하라(田原)에서 사냥을 열었다. 혼다 나카츠카사노타이후(本多中務大輔, 타다카츠의 관직명)와 구키 즈쇼(九鬼圖書)는 명을 받아 하타모토(旗本, 주군 직속 진영)에서 구경했다. 즈쇼가 타다카츠(忠勝)에게 "몰이꾼이 6만쯤은 되지 않겠습니까" 하고 말하자, 타다카츠는 "그렇게까지는 안 될 것이오. 4만 2~3천을 넘지 않을 것이오" 하고 말했다. 즈쇼는 "제가 본 것과는 너무 차이가 납니다" 하며 납득하지 못하는 얼굴이었다. 타다카츠가 말했다. "높은 산에서 평원으로 늘어선 사람들은 적은 수도 많아 보이고, 골짜기에 모인 사람들을 산 위에서 보면 많은 수도 적어 보이는 법이오. 그래서 언뜻 보기에는 5만 남짓이라 여겼으나 줄여서 어림한 것이오."
원문
慶長十五年の春、參州田原にて秀忠公田獵を催され、本多中務大輔、九鬼圖書と仰に依て御旗本にて見物せらる。圖書、忠勝に向つて、勢子凡六萬も有㆑可や、と申ければ、忠勝、夫迄はあらじ。四萬二三千も過ぐべからず、と申さる。圖書、某見る處と懸隔なる違なり、と心得ざる顏色なり。忠勝の曰く、されば高山より平原へ押並べたる人數は、小勢も多く見え、谷に集りたる人數を山上より見れば、多勢も小勢に見ゆる物に候。之を以つて、打見たる處は五萬餘と存候へども、ひかへて積り候、と答へられ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