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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데타다 공이 미카와 다하라에서 사냥한 일

· 拾遺 卷之四 제5화 · 원문(일본어) 쪽

에도 시대 중기 오카야마번의 유학자 유아사 조잔(湯浅常山)이 센고쿠~에도 초 무장들의 일화를 모은 『조잔키단(常山紀談)』(1739년 자서)의 한국어 번역이다. 후대에 전해진 이야기를 모은 책이라 역사적 사실과 다른 대목이 있다.

게이초(慶長) 15년(1610) 봄, 히데타다(秀忠) 공이 미카와(參州) 다하라(田原)에서 사냥을 열었다. 혼다 나카츠카사노타이후(本多中務大輔, 타다카츠의 관직명)와 구키 즈쇼(九鬼圖書)는 명을 받아 하타모토(旗本, 주군 직속 진영)에서 구경했다. 즈쇼가 타다카츠(忠勝)에게 "몰이꾼이 6만쯤은 되지 않겠습니까" 하고 말하자, 타다카츠는 "그렇게까지는 안 될 것이오. 4만 2~3천을 넘지 않을 것이오" 하고 말했다. 즈쇼는 "제가 본 것과는 너무 차이가 납니다" 하며 납득하지 못하는 얼굴이었다. 타다카츠가 말했다. "높은 산에서 평원으로 늘어선 사람들은 적은 수도 많아 보이고, 골짜기에 모인 사람들을 산 위에서 보면 많은 수도 적어 보이는 법이오. 그래서 언뜻 보기에는 5만 남짓이라 여겼으나 줄여서 어림한 것이오."

원문
慶長十五年の春、參州田原にて秀忠公田獵を催され、本多中務大輔、九鬼圖書と仰に依て御旗本にて見物せらる。圖書、忠勝に向つて、勢子凡六萬も有㆑可や、と申ければ、忠勝、夫迄はあらじ。四萬二三千も過ぐべからず、と申さる。圖書、某見る處と懸隔なる違なり、と心得ざる顏色なり。忠勝の曰く、されば高山より平原へ押並べたる人數は、小勢も多く見え、谷に集りたる人數を山上より見れば、多勢も小勢に見ゆる物に候。之を以つて、打見たる處は五萬餘と存候へども、ひかへて積り候、と答へられぬ。

원문(일본어) 쪽 e593.p01

번역: historyfoli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