常山紀談원문 데이터베이스

목차 › 附錄 雨夜燈 › e622

이이다 카쿠베에가 주군 히고노카미에게 간언한 일, 아울러 신타로 님이 빈고노카미 님을 타이르신 일

· 附錄 雨夜燈 제7화 · 원문(일본어) 쪽

에도 시대 중기 오카야마번의 유학자 유아사 조잔(湯浅常山)이 센고쿠~에도 초 무장들의 일화를 모은 『조잔키단(常山紀談)』(1739년 자서)의 한국어 번역이다. 후대에 전해진 이야기를 모은 책이라 역사적 사실과 다른 대목이 있다.

분로쿠(文祿) 연간(1592~1596)에 조선에서 호랑이를 끌고 왔다. 쇠사슬을 달고 양쪽에서 일고여덟 사람이 붙어 끌었다. 조선에 선진으로 건너갔던 여러 대장이 나고야(名護屋)에 돌아와 모였을 때, 힘센 사내 여럿이 그 호랑이를 잡아끌며 "와" 하고 소리치고 달려 나가 늘어앉은 사람들 사이를 지나가니, 모두 놀라 술렁이며 일어섰다. 그때 가토 카즈에노카미 기요마사(加藤主計頭淸正)는 무릎을 세워 고쳐 앉고 주먹을 쥐고 팔꿈치를 벌리고서 매섭게 노려보았고, 호랑이도 잠시 버티고 서서 기요마사를 노려보고는 지나갔다. 가토 사마노스케 요시아키(加藤左馬助嘉明)는 처음부터 벽에 기대어 졸고 있었는데, 호랑이가 지나가고 한참 있다가 눈을 뜨고 "무슨 일로 소란스럽소? 호랑이를 끌고 지나간 때문이오?" 하고 조용히 말했다고 한다. 카즈에노카미의 아들 히고노카미 타다히로(肥後守忠廣)는 아버지에게 크게 못 미치는 사람이었다. 어느 밤 측근 무사(近習)들과 이야기하다가 "나는 큰 힘을 지니고 싶다. 무거운 갑옷 두 벌을 겹쳐 입고 싸움에 나가면 철포가 무서울 일이 없을 것이다" 하고 말했다. 이이다 카쿠베에(飯田角兵衞)는 아버지 대부터 섬겨 여러 번 무용을 떨친 노련한 자였는데, 이를 듣고 앞으로 나아가 말했다. "선대 주군께서는 갑옷 한 벌로 시즈가타케(賤が嶽) 칠본창(七本鎗, 일곱 자루 창)의 무공 이래 셀 수 없이 많은 싸움에 나가셨지만 끝내 가벼운 상처 하나 입지 않으셨습니다. 조선국에 쳐들어가서는 다른 나라 사람들까지 귀장군(鬼將軍)이라 하며 두려워했습니다. 참으로 죽고 사는 것은 천명입니다. 조심하려는 궁리로 될 일이 아닙니다. 다만 '잘 싸우면 살고 못 싸우면 죽는다'는 옛말이 있습니다. 영지 안의 백성을 힘껏 보살피고 가문의 무사들(家中の士)이 진심으로 따르고 붙좇는다면, 다다미 위에 있어도 싸움의 승부의 이치가 훤히 보이므로, 싸움터에 나가서도 천만 군사를 제 손발 부리듯 하게 됩니다. 그러니 가문의 무사들이 입는 갑옷은 모두 대장 한 몸에 겹쳐 입으신 것과 같습니다. 만일 가문의 무사들 마음이 저마다 떠난다면, 설령 갑옷을 백 벌 천 벌 입으신들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한탄스러운 한 말씀입니다." 그러고는 물러 나오면서 "선대 주군에 비해 어찌하여 이토록 못 미치시는가" 하고 소리 내어 울며 나갔다고 한다. 그 뒤 타다히로는 몰락했다. 근래에도 신타로 님(新太郞樣, 이케다 미츠마사)께서 빈고노카미 님(備後守樣, 미츠마사의 아들)에게 "대대로 물려받은 오카네히라(大兼平, 이본에는 大兼光)[역주: 칼 이름.]가 무슨 소용이 되겠느냐. 가문 무사들의 칼을 남김없이 쓸모 있게 만든다면 맞설 적이 없을 것이다. 다이묘의 몸으로 칼 한 자루를 믿는 것은 더없이 한심한 일이다" 하고 타이르셨다는데, 이이다의 말과 같은 이치다.

원문
文祿年中朝鮮より虎を引來る。鐵の鎖を附け兩方より七八人取附きて引きけり。朝鮮先陣の諸大將達名護屋に歸り集られし時、彼虎を大力の男數多引張り、㗢と云ひて駈出並び居られし中を通りけるに、人々皆驚き騷ぎ立ちたる處に、加藤主計頭淸正膝立直し、拳を握り臂を張りて屹と睨まれしに、虎も暫し踏留りて淸正を睨みて通りけり。加藤左馬助嘉明は初より壁に凭れ懸りて居眠りて在りしが、虎の通りつる後に暫く有りて目を開き、何事に騷がれ候や。虎を牽き通れる故歟、と閑に言はれしとぞ。主計頭の子肥後守忠廣は大に父に劣れる人なり。或夜近習の士と物語して、我は大力になり度く思ふなり。重き具足二領打重ね著て軍に出でなば、鐵炮の恐ろしき事有るべからず、と言はれしを、飯田角兵衞は父の時より奉公して、度々武勇の働有りける老功の者なりしが、是を聞き進み出て、先殿樣は御具足一領にて、賤が嶽七本鎗の武功より幾度となき軍に御出なされ候へども、終に薄手も負はせ給はず。朝鮮國に攻入りて鬼將軍と異國の人も恐れ奉り候ひき。誠に死生は天命にて御座候。用心の分別にては參る事にて無く候。但し善く戰へば生き惡しく戰へば死すると申す古語の候。國中の百姓を隨分に勞り、家中の士能く心服し奉り懷き從ふ時は、疊の上にても軍の勝負の道理明に分り候故、軍の場に至り候ても千萬の人數手足を使ふが如くになり候。されば御家中の士の著申す具足は、皆大將の御一身に打重ね召され候と同じ事にて御座候。若し御家中の士心々に離れ候ひなば、假令百領千領御具足を召し候とも、何の御用に立ち可㆑申候や。歎かしき御一言に候、と言ひて退出しけるが、先殿には何とてあれ迄には劣らせ候にや、と聲を上げて泣々出でけるとぞ。其後忠廣滅亡せられけり。近頃にも新太郞樣の仰に、取傳へたる大兼平イ光何の用にか立つべき。家中の士の刀を殘らず用に立てさせなんには、向ふ敵は有るまじ。大名の身にて刀一腰を賴みにせんは口惜しき事の至極なり、と備後守樣に御戒有りしも、飯田と同じ理にこそ。

원문(일본어) 쪽 e622.p01

번역: historyfoli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