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실한 자(律義なる者)가 아니면 무공(武邊)을 세우지 못한다고 예부터 전해 온다. 가토 카즈에노카미 기요마사(加藤主計頭淸正)는 굳센 자를 얻고 싶어 평생 사람 보는 눈(目利)을 기르는 데 마음을 다하고 관상(人相)까지 익혔으나 그 기술을 얻지 못했다. 다만 "성실한 자 가운데 무공 있는 자가 많다"고 말했다고 한다. 또 가토 사마노스케 요시아키(加藤左馬助嘉明)도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기세가 날래고 씩씩한 자는 남의 눈을 놀라게 할 만한 활약을 하지만, 끝까지 버텨 내는 무공은 성실한 자에게 있다. 예컨대 기댈 데도 없고 주인(旦那)의 위세가 기울어 사람들이 두 마음을 품는 가운데 홀로 의리를 지켜 마음이 변하지 않는 굳셈은 성실한 자가 아니면 없다. 아첨하는 자(諂者)는 설령 만에 하나 한때의 무공이 있다 해도 결코 믿을 수 없다. 주인 앞에서 출세할 궁리만 하고, 녹을 받아 남에게 비웃음을 사는 것이 부끄러운 일인 줄은 자기도 알지만, 그 부끄러움을 부끄럽게 여기지 않는 자는 제 몸에 이로운 일이라면 주인을 죽이기라도 할 것이다. 거짓과 탐욕은 종류는 달라도 귀결은 같다." 신타로 님(新太郞樣, 이케다 미츠마사)께서도 늘 "아첨하는 자에게 녹을 주어 두는 것은 도적을 거두어 두는 것과 같다"고 말씀하셨다 하니, 지혜로운 이들의 말이 부절(割符, 둘로 나누어 가진 증표)을 맞춘 듯 꼭 들어맞는다.
무공은 성실한 자에게 있다는 일
에도 시대 중기 오카야마번의 유학자 유아사 조잔(湯浅常山)이 센고쿠~에도 초 무장들의 일화를 모은 『조잔키단(常山紀談)』(1739년 자서)의 한국어 번역이다. 후대에 전해진 이야기를 모은 책이라 역사적 사실과 다른 대목이 있다.
律義なる者ならでは武邊はせぬよし、昔より云傳へたり。加藤主計頭淸正剛の者をほしく思ひ、一生の間目利に心を盡し、人相迄を稽古致されしかども、其術を得られず。唯律義者に武邊者多し、と言はれしとなり。又加藤左馬助嘉明も申されしには、氣さきのけなげなる者は、人の目を驚すほどの働をするといへども、踏つめたる武功は律義なる者にあり。例へば賴みもなく、旦那の威衰へて人々二心を持つ中に、獨義を守りて心がはりなき强みは、律義者ならでは無き事なり。諂者は假令萬一に一旦の武邊ありても曾て賴にならず。旦那の出頭を心掛、知行を取りて人に笑はるゝをも恥とは己も知れども、其恥を恥しとも思はぬ者は、旦那を殺しても身の爲のよき事ならば爲べきなり。僞と貪とは品はかはれども、落著は同じ事なり、と云はれしとなり。新太郞樣にも常に、諂者に知行を與へ置くは、盜賊を抱へ置くと同事なり、と仰せられし由、智者の詞割符を合せたるが如し。
번역: historyfolio